[이강엽의고전나들이] 해서(楷書)와 초서(草書) 사이

2021. 12. 23.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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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의 임종 무렵, 남기고 싶은 말씀을 여쭌 일이 있다.

이광석은 무엇을 하든 기이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었던 듯하여, 그가 쓴 글을 예닐곱 번씩 읽어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초서를 알아보는 이가 적다고 그 쓰임새마저 없는 것도 아니며, 알아보기 힘들다고 아름다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만사를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가리기 시작하면 그처럼 팍팍한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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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의 임종 무렵, 남기고 싶은 말씀을 여쭌 일이 있다. 두 가지 당부를 하셨는데 그중 하나가 필체에 관한 것이었다. 공부를 했다는 자식의 필체가 영 엉망이라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들이 알아볼 수 있게나 쓰라는 핀잔을 듣기도 하는 형편이니, 아름답게 쓰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글씨를 너무 잘 쓰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이도 있었던 모양이다.

“옛날에 행서와 초서를 잘 쓰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왕희지의 서첩을 공부했다. 그는 아침을 굶은 채 친구에게 편지를 휘갈겨 써 보내서 쌀을 구걸했다. 그러나 친구는 저녁이 다 되도록 편지를 보고도 무슨 말인지 알아보지 못하여 쌀을 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 집 부엌에서는 연기가 나지 못했으니, 행서와 초서를 잘 쓰는 것이 대단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데야 어쩌겠는가.”(이덕무, ‘족질 광석에게 보내는 편지’)

굶어가며 보낸 편지에 왕희지의 초서라니 코웃음을 칠 일이다. 점잖은 이덕무가 조카뻘 되는 아랫사람에게 이런 내용을 보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다. 이광석은 무엇을 하든 기이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었던 듯하여, 그가 쓴 글을 예닐곱 번씩 읽어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천하의 대선비인 이덕무가 읽어서도 이해가 안 될 때는 잘못된 것이기 십상이다. 이 점에서, 위의 편지는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서 놀다 보면 세상 사람들과 등지게 될 수 있으니 경계하라는 뜻으로 새겨둘 법하다.

그렇다고 해서 오해는 금물이다. 초서를 알아보는 이가 적다고 그 쓰임새마저 없는 것도 아니며, 알아보기 힘들다고 아름다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제대로 배우지 않고 휘갈기기만 해서 알아볼 수 없다거나, 제 공부가 부족해서 못 알아보는 줄은 모르고 글씨 쓴 이만 탓하는 데 있다. 세상만사를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가리기 시작하면 그처럼 팍팍한 일이 없다. 쓸데없는 일 그만하고 유용한 일을 하라고 다그쳐대는 데야 무슨 대책이 있을까 싶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해서를 잘 쓰면서도 행서와 초서로 예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기꺼이 그들의 유용함을 인정해야만 한다. 아름답지도 않고 알아보지도 못하는 글씨를 예술이라 우기는 일에 주의하는 한편, 실용성의 잣대만으로 예술의 가치를 폄훼하는 일은 없는지 살필 일이다.

이강엽 대구교대교수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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