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크리스마스트리 실종
[경향신문]
서울 청계광장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지난주부터 불을 밝혔다. 방역 마스크를 쓰고 ‘슬기로운 일상회복’이라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는 산타클로스 장식이 인상적이다.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는, 코로나19 시대의 연말 풍경이다. 지구촌 곳곳에서도 각양각색 트리를 세우며 크리스마스 맞이가 한창이다. 600여년 전 독일에서 처음 등장한 크리스마스트리가 각국에 전파되는 계기를 마련한 이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다. 그는 1521년 크리스마스 전날 밤 숲속을 산책하다 눈 쌓인 전나무가 달빛 아래 환하게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전나무 한 그루를 집으로 가져와 솜과 촛불로 장식했다고 한다.
트리는 이후 북유럽·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전역으로 확산됐고, 19세기 말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도 전해졌다. 지금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상징이자 희망과 행복의 아이콘으로 각국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다. 특히나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짙푸른 상록수의 녹색은 무한한 생명력을 뜻하며 희망을 북돋워 준다.
이렇듯 생명의 상징인 트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기후위기 때문이다. 미국크리스마스트리협회는 올여름 ‘열돔’ 폭염과 가뭄으로 미국 북서부에서 재배되는 트리용 침엽수 500만그루 중 10%가 손상됐다고 최근 밝혔다. 이 때문에 나무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전체의 75%가량인 9400만가구가 트리를 설치하고 그중 16%는 생나무, 84%는 중국산 인조 트리를 쓴다고 한다. 모자라고 값비싸진 나무 트리 대신 플라스틱 트리를 세우는 집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 각광받는 크리스마스트리 나무의 시조가 한국산 자생종 구상나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 안타깝다. 소나뭇과 전나무속 상록수인 구상나무는 1907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반출된 뒤 해외에서 트리용으로 적합한 90여종의 신종 개량품종으로 개발됐다. 그러는 새 국내의 구상나무는 말라죽어가기만 했다. 한라산 구상나무 수가 40%나 줄었고, 2013년부터 멸종위기종이 됐다. 구상나무의 죽음도 산의 기온이 올라간 급격한 기후변화가 원인이다. 트리가 플라스틱으로 일컬어질 날이 머지않았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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