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그들

김소연 2021. 12. 2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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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낮 1시 도쿄도 무사시노시 무사시사카이역 앞 광장.

무사시노시가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외국인도 차별 없이 주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조례 제정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투쟁은 2016년 6월부터 시행된 '본국(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향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 일명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 제정이라는 큰 성과를 냈다.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무사시노시의 조례 제정도 결국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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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지난 4일 도쿄도 무사시노시에서 ‘헤이트 스피치’를 반대하는 ‘카운터 행동’에 나선 시민들이 극우정당인 ‘일본제일당’에 맞서 기습 시위를 벌였다. “외국인도 함께 사는 주민입니다”라고 적힌 손팻말 등을 들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특파원 칼럼] 김소연 | 도쿄 특파원

지난 4일 낮 1시 도쿄도 무사시노시 무사시사카이역 앞 광장. 일본의 전통을 존중하고 왕실을 공경한다고 주장하는 보수 정치단체인 ‘신당 구니모리’ 간부들이 거리 연설에 나섰다. 무사시노시가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외국인도 차별 없이 주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조례 제정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간부들은 승합차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일본 국민의 권리를 지키자”, “외국인 참정권 반대”라고 외쳤다. 연설 중엔 일본 내 ‘반중 정서’를 악용해 공포를 조장하는 내용도 있었다.

10분쯤 지나자, 어디선가 큰 음악 소리가 들렸다. 남성 두 명이 나타나 확성기로 음악을 틀면서 “차별 반대” 구호를 외쳤다. 주변에 있던 경찰 10여명이 두 남성을 에워쌌다. 이들은 아랑곳없이 활기찬 음악을 크게 틀었고, 보수단체 간부들의 연설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입은 움직이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우스운 상황이 계속됐다. 취재를 위해 다음 집회 장소로 옮겨야 해서, 두 남성이 누구인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혐한 발언’으로 논란이 큰 사쿠라이 마코토 전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 회장이 대표로 있는 극우정당인 ‘일본제일당’도 이날 오후 2시30분 기치조지에서 거리행진을 잡아놨다. 100여명의 참가자들은 ‘무사시노시 외국인 주민투표 조례 결사반대’라는 펼침막과 욱일기 등을 들고 행진을 시작했다. 20~30분 뒤 대열이 삼거리에 도착할 즈음, 이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등장했다. 그들은 집단적이면서도 개별적이었다. 한국에서 7~8년 동안 노동 분야를 담당해 다양한 투쟁을 봐왔지만 참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예컨대 한 여성은 확성기로 끊임없이 조례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다른 남성은 극우정당 참석자들을 향해 “차별 반대”를 우렁차게 외쳤고, “외국인도 함께 사는 주민”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거나 시민들에게 선전물을 나눠주는 사람도 있었다. 같은 목적을 가진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었다. 집회를 이끄는 리더가 있는 한국식 투쟁과는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 늘 조용하기만 한 일본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격렬한 투쟁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라 신선했다.

이들이 다큐멘터리와 책, 기사에서만 보던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하는 ‘카운터(반대) 행동’에 나선 시민들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앞서 무사시사카이역에서 음악을 틀었던 두 남성도 이곳에서 다시 마주쳤다.

카운터 행동은 2013년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재특회가 도쿄 한인타운인 신오쿠보에서 “조선인을 몰아내자”며 연일 과격한 시위를 했는데, 이를 두고 볼 수 없는 시민들이 저항에 나선 것이다. 이들의 투쟁은 2016년 6월부터 시행된 ‘본국(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향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 일명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 제정이라는 큰 성과를 냈다. 법과 조례가 만들어져 ‘헤이트 스피치’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는 인식은 널리 퍼졌지만 ‘혐오와 차별’은 여전하다.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무사시노시의 조례 제정도 결국 무산됐다. 21일 시의회는 본회의를 열어 외국인 주민투표와 관련한 조례안 제정을 논의했지만 반대(14명)가 찬성(11명)보다 많아 부결됐다.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걱정은 덜 된다. 어디선가 ‘혐오와 차별’이 있으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카운터 행동’은 지금도 건재하다.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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