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최악의 후보, 최악의 선거
아내·아들 의혹 겹쳐 설상가상
사과의 진정성마저 의심받아
최소한의 권위 확보도 어려워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일부러 지려고 해도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 두 아들 병역비리 의혹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결정타가 됐다. 병역비리 의혹은 ‘법과 원칙’이라는 이회창의 상징 자본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렸다. 병역문제는 한국 사회의 ‘역린’인데 처음부터 사과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끝없는 해명에 매달렸던 것도 패인이다. 이회창은 훗날 회고록에 “이 병풍 사건을 돌이켜 보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미숙하고 어리석었던가 하는 것이다. 나나 당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대비가 없었다”고 적었다.
정말 이런 대선은 처음이다. ‘최악의 막장 대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붙었다. 대선이 7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부동층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여야 진영이 결집하면서 부동층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최악의 후보와 최악의 선거에 실망한 정치 혐오의 결과다.
여야 후보와 가족의 도덕성·인성 문제를 놓고 이전투구가 벌어지며 정책·비전 경쟁은 실종된 지 오래다. 여야 선거대책위도 사실과 허위를 교묘히 섞은 주장으로 상대방 흠집 내기에 골몰하며 정책은 뒷전이다. 윤석열의 ‘디지털 플랫폼 정부’나 이재명의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 공약 등은 꽤 구체적이고 매력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지만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이슈의 파급력 못지않게 이슈를 대하는 태도 역시 지지율 박빙 구도에서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사과의 생명은 타이밍과 진정성이다. 사과는 늦지 않게 신속해야 한다. 또 사과가 진정성이 있으려면 대상이 명확하고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풍을 맞기 일쑤다. 민주당 중진 이상민 의원은 “이재명은 너무 빨리 사과하니까 진짜로 뉘우치는지 의심이 들고, 윤석열은 너무 늦게 시간을 끌고 있어 억지로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는데,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두 유력 후보 및 그 가족들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과거사는 앞으로도 더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양당이 상대방 후보와 가족의 과거를 후벼 파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선거에서 ‘누가 더 잘못한 게 없나’가 선택 기준이 되고 있으니 이처럼 불행한 일도 없다. 이런 식의 선거로는 한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승자가 누가 된다 한들 선거를 치르며 바닥까지 추락한 호감과 신뢰도로는 정상적 국정운영에 필요한 권위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진다.
20대 대선은 후보나 그 가족이나 도덕적 잣대가 국민의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런데도 결국 대다수 국민은 그 두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차선의 선택도 아닌 차악의 선택을 강요하는 작금의 현실이 너무 씁쓸하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최근 윤석열의 지지율이 약세를 보이자 “환장할 노릇”이라고 했다. 진짜 환장할 사람은 두 후보가 주도하는 최악의 막장 선거를 지켜봐야 하는 우리 국민이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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