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강화 '역사왜곡 논란'에 폐지 청원 이틀새 30만명.. 정부 규제 가능할까? [법잇슈]

박지원 2021. 12. 2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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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왕후'·'조선구마사' 등 역사 왜곡 논란 뒤이어
민주화운동 폄훼, 안기부 미화 논란 휩싸인 '설강화'
정부에 방영중지 조치 요구 국민청원 32만명 동의
방송사·광고사 등 향한 중단 요구 소비자 권리지만
공권력으로 드라마 방영 막을 근거 없고 위헌 소지
JTBC 주말극 ‘설강화’ 스틸컷. JTBC 제공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드라마 방영은 중지돼야 한다.”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JTBC 드라마 ‘설강화’를 둘러싼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방영중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청원 시작 이틀 만인 21일 동의 인원 32만명을 넘겼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중문화 작품을 공권력이 규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정부를 향해 방영중지 요청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대중문화 영역에서 역사 왜곡 논란이 빈발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에 대한 정부 규제가 법적으로 가능한지 알아봤다.

◆‘철인왕후’, ‘조선구마사’… 연이은 드라마 역사 왜곡 논란 왜

최근 1년 새 대중문화계에서는 역사 왜곡 논란으로 드라마가 철퇴를 맞는 일이 반복됐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방영된 tvN의 ‘철인왕후’는 조선왕조실록 폄훼 및 실존 인물 희화화 논란으로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했고, SBS의 ‘조선구마사’는 과도한 중국 색과 역사 왜곡 연출로 방영 2회 만에 폐지됐다. 설강화와 같이 JTBC 드라마로 제작 중이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도 공산당 미화 논란으로 촬영이 중단됐다.

연이은 드라마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해 미디어 전문가들은 대중의 지식수준과 눈높이, 미디어 환경 변화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시청자의 지적 수준이 높아져 과거처럼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직접 자료를 찾고 검증하며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데다, 의견 표출 창구가 다양해져 문제 제기와 집단행동도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변화를 만들어 본 경험이 축적돼 대중의 문제 제기가 갈수록 적극적이어진다는 분석도 나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중이 앞서 조선구마사 등 역사 왜곡 드라마에 문제를 제기해 조기종영하게 하는 경험을 하지 않았나”라며 “이 같은 경험의 축적이 대중에게 자신감을 줘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참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드라마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찰과, 역사 소재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결핍돼 이런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충분히 오해할 소지를 가진 드라마여서 왜곡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런 평가가 과도하다고 볼 수도 있다”며 “그러나 결과적으로 드라마에 역사적 사실을 끌고 들어올 때는 이런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청와대 게시판에 ‘드라마 설강화 방영중지 청원’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국민청원이 이틀 만인 21일 오후 9시 기준 동의 인원 32만명을 넘어섰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방영 중단 요구할 수 있지만, 정부 규제는 또 다른 문제”

방송사와 제작사 등을 상대로 한 시청자들의 중단 요구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종의 소비자의 권리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시청자들이 방송사, 제작사에 ‘이 작품은 역사 왜곡의 우려가 있으니 방영을 멈춰달라’고 요구하는 건 사상의 자유시장 영역에서 소비자의 권리로 볼 수 있다”며 “마찬가지로 광고주와 사업자 등에게 해당 작품을 지원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도 사상의 자유시장 영역에서 허용되는 소비자운동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청원 글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정부가 직접 드라마 방영에 개입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드라마 방영 중단을 강제할 만한 법적 근거가 없고, 공권력으로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건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손 변호사는 “모든 표현물이 그렇지만, 특히 예술작품처럼 창작의 영역에까지 정부가 개입한다면 그건 헌법을 위배하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특히 국론 분열, 국민 분열, 역사 왜곡 등 주관적으로 해석 가능한 불명확한 기준으로 콘텐츠들을 차단하기 시작하면 곧 대중문화의 범주를 벗어나 점차 사회 전체에서 사상검열이 강화될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대중문화에 요구되는 기준 갈수록 엄격… “제작 주체들 신중해져야”

JTBC 측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던 이들의 개인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창작물”이라며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지만, 비판 여론은 식지 않고 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광고·협찬사들은 줄줄이 지원을 중단하고 사과문을 올리며 선 긋기에 나섰다. 첫 방송 이후 온라인에서는 설강화에 광고 또는 협찬 중인 기업들과 이를 철회한 기업들의 목록이 공유되기도 했다.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도 제기될 전망이다. 청년단체 세계시민선언은 22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설강화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중문화계에 엄격한 윤리 기준과 사실확인을 요구하는 현상이 앞으로 더 강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전에 논란의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콘텐츠 제작자들이 사실 확인과 검증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구정우 교수는 “더는 정보가 독점된 시대가 아니고 누구나 정보를 활용해 콘텐츠를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대중의 눈높이도 높아졌다”며 “그에 맞춰 대중문화 제작 주체들도 더 신중해져야 하고 데스킹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세한 환경에 있는 중소제작사들보다는 대형방송국 등 발주하는 측이 보다 두터운 검증 시스템을 갖추고 책임감 있게 콘텐츠를 선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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