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프리즘] 지자체에 쏟아지는 수상한 상복

이정하 2021. 12. 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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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시·군 등 지방자치단체들을 담당하는 기자들에게는 으레 이런 소식들이 전달된다.

각종 민간단체나 정부기관, 시민단체, 언론사 등에서 주최한 시상식에서 수상했다는 홍보성 메일을 하루에 20통씩도 받는다.

이들의 수상 소식을 알리는 인터넷언론이나 지역신문 등의 보도가 차고 넘칠 정도이며, 도로 곳곳에도 관변단체나 시·군 등이 내건 수상 소식을 전하는 펼침막이 휘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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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게티이미지뱅크

이정하 | 전국팀 기자

연말이면 시·군 등 지방자치단체들을 담당하는 기자들에게는 으레 이런 소식들이 전달된다. ‘○○시, 상복 터졌다’, ‘○○군, 유종의 미’, ‘○○시, 행정력 과시’….

다름 아닌 지방정부의 각종 수상 소식을 전하는 이메일 알림이다. 각종 민간단체나 정부기관, 시민단체, 언론사 등에서 주최한 시상식에서 수상했다는 홍보성 메일을 하루에 20통씩도 받는다. 건축, 문화·예술, 행정, 시이오(CEO) 경영대상, 청렴, 인권, 공공, 민관협치, 지역복지 등 수상 분야와 내용도 다양하다. 경기도와 인천 시·군들이 올해 받은 상은 적게는 20여개, 많게는 70개 이상인 경우도 있다.

수상 소식을 전하는 보도자료 속에는 시장·군수님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들의 수상 소식을 알리는 인터넷언론이나 지역신문 등의 보도가 차고 넘칠 정도이며, 도로 곳곳에도 관변단체나 시·군 등이 내건 수상 소식을 전하는 펼침막이 휘날리고 있다.

한해를 정리하는 시점에 잘한 행정으로 상을 받았다면 이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런 상을 받을 만한 일을 했는지’ 의심 어린 눈길을 보낸다. 의혹의 눈길은 시상식 주체나 선정 절차에도 쏠린다. 널리 권위를 인정받는 기관이나 전문기관의 엄정한 평가를 거친 상도 있지만, 생소한 주최 단체가 마구잡이로 남발한 상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기준으로 선정됐는지 평가 기준이 공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상 의미도 퇴색할 뿐만 아니라 매년 반복되면서 단체장 ‘치적 홍보용’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공신력 있는 정부기관의 상을 타려는 지자체의 경쟁도 뜨겁다. 이 경우엔 중앙정부의 평가 기준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지역 현실이나 주민 요구와는 동떨어진 수상이 되기 일쑤다.

내년 지방선거(6월1일)를 다섯달 남짓 남긴 상황에서 ‘재신임’을 받아야 하는 단체장들로서는, 외부기관에서 받은 상은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알리는 좋은 홍보 수단이다. 경기도 한 자치단체장은 “외부기관에서 받은 수상 실적은 한해 시정 또는 의정을 평가하는 객관적 지표 가운데 하나”이며 “단순 치적 홍보로만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자체장 개인을 위한 수상에 혈세가 투입되는 것은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각종 시상식에 참가한 지자체가 참가비나 평가비 등 다양한 이름으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널리 뿌리내린 관행이다. 국민권익위원회도 2009년 각종 시상식과 관련해 예산이 투입되는 사례를 확인하고 지방정부들에 개선 권고를 내렸지만, 일선에선 별다른 변화가 없다.

언론사가 주는 상을 받게 되는 경우엔 별도의 광고비가 집행되는 사례도 흔하다. 일종의 ‘암묵적 포상 거래’인 셈이다. ‘보도’와 ‘사업’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언론의 본분을 망각한 일부 지역언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자체의 광고·홍보비가 불투명하게 관리되는 탓도 있다. “시상식에 별도로 참가 서류를 낸 적이 없는데 수상을 통보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뒤 노골적인 광고비 요구가 이어졌다.” 지자체 홍보 담당자들에게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이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도 제구실을 못 하고 있다. 단체장과 마찬가지로 지방의원들도 내년 선거 홍보물에 한줄이라도 더 넣으려면 외부기관에서 주는 상에 목을 매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어떤 지방의원은 ‘선출직의 비애’라고도 했다. 결국 시·군 홍보팀처럼 의회 사무국도 포상 거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코로나19로 대다수 국민이 고통을 감내하며 버티는 현실에서 뒷거래가 의심스러운 지자체의 줄 잇는 ‘치적 홍보’가 환영받을 만한 일인지, 한번쯤 되돌아보고 대책 마련에 머리를 모을 때 아닐까.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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