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과 대만, 두 개의 투표에 담긴 민의 [이종섭의 베이징 리포트]

베이징|이종섭 특파원 2021. 12. 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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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차이잉원 대만 총통(가운데)이 지난 18일 국민투표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차이 총통과 집권 여당은 이날 투표에서 4개 안건이 모두 부결되면서 예상 밖의 승리를 거뒀다. 타이베이|로이터연합뉴스


지난 주말 홍콩과 대만에서 각각 중요한 투표가 실시됐다.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와 대만 국민투표다. 투표 결과는 중국과 국제사회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예상대로, 하나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지난 19일 홍콩에서 치러진 입법회 선거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중국이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만들겠다며 선거제도 개편을 밀어부친 후 처음 치러진 선거였다. 선거제 개편의 목적은 민주진영 인사들의 출마를 막는 것이었다. 목표대로 후보자들은 대부분 친중 일색으로 채워졌다. 민주진영은 아예 후보를 내지 못했다. 개표 결과 직·간접 선거로 선출하는 전체 90석 가운데 89석을 친중파가 차지했다. 당선자 가운데 단 1명만 중도파로 분류된다.

애초부터 관심은 뻔한 선거 결과가 아니라 투표율이었다. 투표 거부는 선택지를 잃은 홍콩 시민들이 유일하게 취할 수 있는 소극적 저항의 방식이었다. 직접 선거로 20명을 뽑는 지역구 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30.2%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직전 선거 투표율 58.29%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낮아졌다. 민심이 낮은 투표율로 표출된 셈이다. 사뮤엘 추 홍콩민주평의회 총장은 “압도적 다수의 홍콩인이 베이징이 완전히 통제한 의례적인 선거를 보이콧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홍콩 입법회 선거 하루 전 대만에서는 4개 안건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최대 쟁점은 가축 성장촉진제 락토파민이 함유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 안건이었다. 당초 돼지고기 수입 금지를 포함한 4개 안건 모두 찬성 여론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투표 결과는 뒤집혔다. 4개 안건 모두 반대표가 많아 부결됐다. 특히 사전 여론조사에서 찬성 여론이 가장 우세했던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는 차이잉원(蔡英文) 정부의 반중·친미 정책과 직결된 문제였다.

차이잉원 정부는 지난해 12월 국내 반대 여론에도 락토파민이 함유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밀어부쳤다. 장기적으로 대중국 경제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차이 총통은 투표 전날 “돼지고기 수입은 대만이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와 관련된 경제·통상 문제”라며 부동의를 호소했다. 중국이 대만 통일 의욕을 노골화하며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심은 결국 차이잉원 정부의 탈중국 기조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홍콩 입법회 선거와 대만 국민투표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치러지면서 묘하게 오버랩됐다. 투표를 통해 표출된 민심은 모두 중국을 겨냥하고 있었다. 반중 정서가 그 밑바탕에 있다. 대만 민심에는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하에서 빠르게 중국화되는 홍콩의 모습도 영향을 미쳤을 터다. 중국은 지난해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과 올해 선거제 개편을 통해 홍콩에 대한 장악력을 높인 후 일국양제를 앞세운 대만 통일론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 여론조사에서는 일국양제에 반대하며 이념이 비슷한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90% 가까이 나온다.

일국양제를 무력화한 홍콩 입법회 선거와 이를 지켜보며 정부의 탈중국 기조에 힘을 실은 대만 국민투표 결과에서 공통점을 찾게 되는 이유다. 중국은 두 개의 투표 결과에 담긴 민의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홍콩에서부터 일국양제가 바로 서지 않으면 대만 통일론이 설득력을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자고로 민심을 얻어야 천하를 얻는다고 했다. 다름 아닌 중국 고전에서 나온 말이다.

베이징|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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