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황당한 중대재해 해설서, 혼란 키운다

기자 2021. 12. 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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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이 실질을 삼켜 버렸다.' '법 기술이 안전원리를 내몰았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기업 현장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어 해설서에 기대를 걸었지만 그마저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부각하기 위해 기본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을 구체적 조치만 규정한 '기술법'으로 격하시키는 건 점입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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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형식이 실질을 삼켜 버렸다.’ ‘법 기술이 안전원리를 내몰았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기업 현장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시행일이 한 달 남짓한 만큼 기업들은 안전역량 강화보다는 처벌 회피에 골몰하고 있다. 실효성과 현실을 무시한 엄벌 중심 입법과 정부의 자의적 법 해석에 발등의 불부터 끄자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는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법문의 의미를 벗어나는 이현령비현령 해석은 넘치는 반면, 정작 현장에서 궁금해하는 사항에 대해선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 해설서가 의문을 해소하긴커녕 혼란을 부추기고 형식적 안전을 조장하는 양상이다.

직업공무원제에서 공무원은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을 생명처럼 여겨야 한다. 그런데 근래의 산재(産災)예방 행정을 보면 그런 정신은 찾아보기 어렵고 되레 상황을 악화시킨다.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어 해설서에 기대를 걸었지만 그마저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형법 해석의 기본인 엄격해석 원칙을 도외시하고 멋대로 해석하는 부분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법리에 대한 무지도 놀랍지만 법치주의에 대한 불감증은 더욱 놀랍다.

특히 문제는, 어떻게든 대표이사를 끌어들여 처벌하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이사 처벌을 위해선 헌법 원칙은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인 듯하다.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물으려면 합당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도 ‘입법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선 법적 근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독선마저 엿보인다. 자의적 법 집행은 예방조치를 하더라도 어차피 처벌될 것이란 생각에 기업을 자포자기로 내몬다.

현장에서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설이 없다. 유사 판례도 무시하겠다는 태세다. 원청이 해야 하는지 하청이 해야 하는지, 원청이 한다면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 법 조문 간에 충돌되는 문제(예를 들면 엘리베이터 설치공사의 경우 제4조는 원청에, 제5조는 하청에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설명이 없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간에 상충되는 문제(재해재발방지대책의 경우 전자는 원청에, 후자는 하청에 의무를 부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원청의 의무와 불법파견의 관계에 대한 해설조차 없다. 해설서의 분량은 많은데 알맹이가 없다는 냉소가 나오는 이유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부각하기 위해 기본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을 구체적 조치만 규정한 ‘기술법’으로 격하시키는 건 점입가경이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악과 엉터리 운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자초하더니, 기어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철학 없는 법으로 전락시킬 셈인가.

현장에 갈 때면 정부가 산재예방에 도움이 되기보다 걸림돌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책임은 기업에 떠넘기면서 처벌에만 관심이 있고, 시스템 개선과 인프라 조성에는 너무 소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자세와 방식으로는 행정의 산재예방 기여는 기대난망이다. 큰 기대는 하지 않겠다. 법치 행정의 기본만이라도 지켜주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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