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거짓말

한겨레 2021. 12. 2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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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아내 김건희씨의 ‘허위 경력’ 논란에 대해 “국민분들께 심려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숨&결]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연좌제는 언제나 후진적이다. 헌법 13조 3항에도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18대 대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독재자의 딸”이라 공격했을 때 유감이었다. 부모나 자식은 선택할 수 없다. 박근혜 후보는 독재자의 딸이어서가 아니라, 독재자의 딸이었기에 획득 가능했던 상징자본과 인맥을 본인의 의지로 잘못 활용하였기 때문에 대통령 자격이 없었다. 그것은 어떤 아버지의 딸인가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단점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재직 중 르윈스키 추문으로 탄핵 일보 직전까지 갔지만, 1992년 그의 첫 대선 캠페인 기간에도 수많은 부적절한 성관계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이 보도된 바 있다. 대통령 부인은 엘리제궁 밖에 따로 살고 대통령은 정부와 동거할 수도 있는 프랑스가 아니라 청교도적인 엄숙주의가 남아 있던 미국인 만큼 언론은 클린턴의 당선을 회의적으로 봤다. 그 당시 나는 미국 대학원 친구들한테서 민주당 소속 클린턴은 ‘아무하고나’ 해서 저렇게 문제가 되지만, 공화당의 부시는 이너서클의 여성만 관계하기 때문에 조용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의 의구심은 최근 부시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여러 미투 폭로를 계기로 사실로 확인되었다.

대통령의 부인은 그런 남편을 참아내며 바버라 부시처럼 햇살같이 밝게 웃으며 살아가야 한다. 육영수 여사처럼 남편 대신 총탄에 희생되기도 한다.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 캠페인 중 빌 클린턴이 자신을 뽑으면 미국이 능력 있는 대통령 두 명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원 플러스 원 홍보를 했을 때, 언론으로부터 미국 국민은 남편을 선출하지 부인을 뽑지 않는다는 공격을 받자 “내가 집에서 차나 끓이고 쿠키나 구웠던 게 아니다”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또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에는 부인도 공직자에 준하는 검증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야당 후보 부인의 ‘줄리’ 의혹이 더는 거론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논란을 틈타 공격하는 쪽이나 수비하는 쪽 모두 유흥업소 종사자에게 가하는 모욕적인 발언도 자제해야 한다. 다른 대안이 있음에도 본인의 의지로 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불가피한 가정형편과 제대로 된 여성 일자리 부족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막다른 일자리에 몰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런 업소를 이용하는 주된 소비자인 남성에 대한 동일한 강도의 비난 없이 종사하는 여성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 것도 이율배반적이다.

이런 입장이 모든 가족 검증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배우자나 성인 자녀의 일탈과 범죄는 온전히 그들의 몫으로 처벌받아야 하지만, 그것을 비호하기 위해 권력을 가진 후보 당사자의 부적절한 개입이나 은폐 시도가 있었는가는 훨씬 더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왜곡된 관계가 만들어낸 파국의 기억이 살아 있다. 열 명의 최순실이 곁에 있었더라도 박근혜씨가 그에 휘둘리지 않았다면, 그의 범죄 행위에 법적 책임을 물었다면 탄핵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정책 역량 외에 대선 기간 꼭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후보의 ‘거짓말’이다. 후보의 위선과 이중 잣대이다.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도청보다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의 거짓말과 위증이었다.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에서도 탄핵의 문 앞까지 그를 이끈 것은 해당 행위 그 자체보다 이에 대한 위증과 사실관계에 대한 부인이었다.

그런 점에서 부인의 수많은 허위 경력에 대한 윤석열 후보의 태도는 우려를 자아낸다. 가장 중요한 검증의 지점은 과연 후보가 그것을 단지 “정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경력에 대한 명백한 거짓말로 인정할 수 있는가이다. 위선은 선에 대한 악의 존경이 아니라 그저 선의 반대일 뿐이다. 결국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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