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 논란 '설강화' 방영중지 국민청원 16만명 돌파→광고협찬 줄줄이 중단(종합)

황혜진 입력 2021. 12. 19.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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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황혜진 기자]

역사 왜곡 논란 드라마 JTBC '설강화 : snowdrop'(극본 유현미/연출 조현탁/이하 설강화)를 향한 방영 중지 요구가 지속되고 있다. 국민청원 동의자 수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15만 명을 돌파했고, 광고 협찬은 줄줄이 중단되고 있다.

12월 18일 첫 방송된 '설강화'는 배우 정해인, 그룹 블랙핑크 멤버 지수 주연의 사전 제작 드라마다. JTBC 드라마 'SKY 캐슬' 조현탁 감독과 유현미 작가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춰 만들었다.

제작진은 1987년 서울 여자 대학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간첩 임수호(정해인 분), 그를 감추고 치료해준 대학생 은영로(지수 분)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초 시놉시스가 유출되며 여러 설정으로 인해 역사를 왜곡하는 드라마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 시작했다.

이 같은 논란에 제작진은 두 차례에 걸쳐 공식입장을 밝혔다.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며 극 중 배경과 주요 사건 모티브는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1987년 대선 정국이기 때문에 역사왜곡이 아니라는 것. 1987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가상의 창작물인 만큼 실제 역사를 왜곡할 의도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의도의 진위를 차치하더라도 '설강화'는 역사 왜곡 논란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모양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쓰고, 고강도 고문에 시달리며 죽음까지 이른 희생자들이 다수 실존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 1회에서는 시놉시스대로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1987년을 시대 배경으로 설정했고 간첩, 그리고 그 간첩을 쫓는 이른바 '대쪽 같은' 안기부 요원을 주요 캐릭터로 내세웠다. 안기부는 실상 무고한 운동권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가며 무자비한 고문을 일삼았던 단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이들은 각각 속한 정부나 조직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다. 간첩 활동이나 안기부가 미화된다는 지적도 '설강화'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온라인 상에서는 이미 '설강화' 내용을 토대로 한 역사 왜곡성 게시물이 판을 치고 있다. 지수의 글로벌 인기에 힘 입어 해외 팬들과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간첩과 안기부 관련 가상 설정이나 잘못된 정보들이 마치 사실처럼 퍼지고 있다.

제작진과 일부 네티즌들은 역사 왜곡을 우려하는 다수 시청자들이 현실과 가상의 창작물을 구분하지 못한다며 되레 억울함을 토로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가상이라는 이 허울 좋고 비상식적인 명분 덕에 교묘한 2차적 역사 왜곡까지 자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가슴 아픈 민주화운동 역사와 악랄한 안기부 조직이 공존했던 1987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갖다 쓰고 싶었다면 일말의 역사 왜곡 우려가 나오지 않게끔 보다 섬세하게 접근했어야 한다.

지난 6월 종영한 KBS 2TV 드라마 '오월의 청춘'의 경우 '설강화'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를 배경으로 설정해 황희태(이도현 분)와 김명희(고민시 분)의 아련한 사랑 이야기를 다뤘지만 역사 왜곡 의혹이나 논란은 전무했다. '설강화' 제작진은 억울함만 표명할 것이 아니라 왜 이토록 많은 시청자들이 같은 시대적 배경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설강화'에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인지 좀 더 깊이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제작진은 '설강화' 시청자 게시판 내 모든 게시물들을 제작진과 작성자만 열람 가능하도록 비공개 처리해놓은 상태다. 시청자들과의 소통 창구를 막아버린 셈이다. 폭넓은 창작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왜 자신들의 창작물을 소비하고 수용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에는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 의문이다.

한편 19일 오전 대한민국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재된 '설강화' 방영 중지 청원은 이날 오후 9시 기준 16만 8,0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 글을 올린 A씨는 "민주화운동 당시 근거 없이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사망한 운동권 피해자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저런 내용의 드라마를 만든 것은 분명히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A씨는 "해당 드라마는 OTT 서비스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시청할 수 있으며 다수의 외국인에게 민주화운동에 대한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기에 더욱 방영을 강행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엄연한 민주주의 국가이며 이러한 민주주의는 노력 없이 이뤄진 것이 아닌, 결백한 다수의 고통과 희생을 통해 쟁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로부터 고작 약 30년이 지난 지금,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드라마의 방영은 당연히 중지돼야 하며 한국문화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방송계 역시 역사왜곡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광고 협찬사들도 속속 광고 중단 조치를 마쳤거나 진행 중이다. 기능성 차 브랜드 티젠은 19일 오후 공식 SNS를 통해 "최근 일어난 광고 협찬 문제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티젠은 직접적인 제작 협찬이 아닌 채널에 편성된 단순 광고 노출을 한 것이었으나 해당 이슈에 대해 통감하며 해당 시간대 광고를 중단하도록 조치했다. 티젠은 관련 드라마 제작과 일절 관계가 없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앞으로 모든 활동에 더욱 신중하게 임하겠다"고 사과했다.

도자기를 협찬했던 도평요 측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어떠한 정치적 색깔도 없는 소규모 운영 회사"라며 "해당 드라마 대본 혹은 줄거리에 대한 사전 고지를 받은 바 없었고 협찬에 대해 자세히 검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단순 제품 협찬 건에 응했을 뿐 이로 인한 금전적 이득과 협찬 홍보는 일절 없었다. 해당 사항에 대해 드라마 관계자에게 기업 로고 삭제 요청을 했고 모든 제품은 반환 처리했다. 협찬 전 꼼꼼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진행해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알렸다.

패션 브랜드 가니송 측은 공식 SNS를 통해 "역사 왜곡으로 인해 상처 받은 모든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본사는 협찬 요청 당시 '설강화' 드라마 대본이나 시놉시스를 사전에 고지받은 적이 없다. 의상팀으로부터 '블랙핑크 지수가 1980년대 인기 많은 대학생 설정으로 출연한다. 감독 전작으로는 'SKY캐슬'이 있다'라는 내용만 전달받았다"며 "'설강화' 방영 방송사 JTBC 제작진에게 가니송 관련 내용 삭제를 요청했다. 의상팀으로부터 제작진 연락처를 받아 직접 연락을 취하고 있다. 100% 사전 제작 드라마이다 보니 제품 노출을 완전하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으나 최대한 노출을 막을 수 있도록 계속 조치를 취하겠다. 이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협찬하겠다"고 사과했다.

떡 브랜드 싸리재마을 측은 공식 홈페이지에 "'출연 배우와 제목을 들었을 뿐 어떤 내용이 제작될 거라는 설명은 듣지 못했다. '설강화'가 민주화 역사를 왜곡하고 안기부를 미화할 수 있다는 많은 분들의 우려가 있다는 걸 알게 돼 담당자에게 바로 협찬 철회를 요청했다. 철회는 바로 적용됐으나 화면에 노출되는 로고는 12회까지 편집 완료돼 바로 수정이 어렵다고 한다. 드라마 내용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역사 왜곡이 될 수도 있는 드라마 제작에 제품을 협찬한 점 정말 죄송하다. 앞으로는 책임감을 갖고 신중하게 결정해 실망을 드리지 않도록 하겠다"라는 입장문을 게재했다.

한스전자 측 역시 '설강화' 역사 왜곡 논란 관련 항의에 "드라마 내용은 어제 첫 방영 이후 알게 됐다. 작은 회사라 인원도 적어 이에 대한 대처가 늦었다. 마음 상한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제작사에 요청해 광고 중단을 할 예정이다"고 답했다.

(사진=JTBC '설강화' 제공)

뉴스엔 황혜진 blos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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