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기 사망' 이후 이재명·정진상 수사는?
"시장님 명 받아 한 것 아닙니까" "정 실장이 저한테 그렇게 얘기했던 거고"
(시사저널=하준호 중앙일보 사회1팀 기자)
12월10일 오전 7시40분, 경기도 고양시 주엽동의 한 아파트 단지 화단. 60대 남성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의 이름은 유한기. H건설사 임원이던 그는 2011년 7월 성남시설관리공단에 입사, 2013년 9월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과 함께 공사 개발사업본부장에 올라 2018년 9월까지 근무했다.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지난가을부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의혹의 중심에 선 성남시 산하 공기업이다. 유씨는 여기서 '유원(one)' 유동규 전 기획본부장(52·구속기소)에 이어 '유투(two)'로 통하는 2인자였다고 전·현직 공사 관계자들은 전한다.

녹취록에 명시됐으나 윗선 수사 실종
검찰의 대장동 개발 의혹 수사 초반에 유씨는 이 사건의 주범 격인 유동규 전 본부장, 민간사업자 측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56·구속기소),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48·구속기소),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53·불구속기소) 등 이른바 '대장동 4인방'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었다.
공사 내부에서 유동규 전 본부장 측근 정도로만 여겨지던 그는 지난 10월25일 황무성 전 공사 사장(71)이 국민의힘을 통해 2015년 2월 유한기씨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다는 내용의 당시 녹취파일을 공개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녹취파일 속 유씨가 황무성 전 사장에게 사직서를 써서 달라고 요구하면서 언급한 사람들 때문이었다.
유한기 "사장님이나 저나 뭔 빽이 있습니까. 유동규가 앉혀놓은 거 아닙니까. (…) 그건 이미 사장님 결재 나서 저한테 정 실장이 저한테 그렇게 얘기했던 거고."
황무성 "정 실장이 당신한테 얘기했어?"
유한기 "아 얘기했잖습니까 그때. 내가 그 뒤에도 언제 갈 겁니다." (중략)
황무성 "아니 뭐 그게 지 거야. 원래 뭐 그걸 주고 말고 할 거야."
유한기 "아 참 시장님 명을 받아서 한 거 아닙니까 대신. 저기 뭐 시장님 얘깁니다. 왜 그렇게 모르십니까." (중략)
황무성 "내가 써서 줘도 시장한테 갖다 써서 주지, 당신한테는 못 주겠다 정말."
유한기 "쓰시고 같이 가시죠. 그럼 오늘 같이 가시죠. 제가 정 실장님한테 자리 계시나."
황무성 전 사장에 따르면 시장님은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정 실장은 당시 성남시 정책실장이자 이 후보의 최측근인 정진상 민주당 선대위 비서실 부실장을 의미한다. 이 녹취파일 속 대화 내용은 국민의힘이 이재명 후보와 정진상 부실장, 유동규 전 본부장, 유한기씨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강요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이재명 후보, 정진상 부실장 등의 직권남용·강요 혐의 대신 남 변호사, 정 회계사 대질조사 과정에서 튀어나온 유한기씨의 2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부터 정조준하기로 했다.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 등이 2014년 8월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2013년 위례신도시 사업 특혜를 받은 대가로 유한기씨에게 2억원을 건넸다는 내용이었다. 대장동 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 관련 한강유역환경청 로비 명목으로 돈을 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퇴 압박 의혹으로 급물살을 탈 줄 알았던 '윗선'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유씨의 개인 일탈에 수사력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검찰, 엉뚱하게 유씨 개인 문제만 수사
검찰은 지난달 초 유한기씨의 뇌물수수 혐의를 들어 그의 휴대전화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뇌물 액수를 두고 남 변호사(2억원)와 정 회계사(5000만원)의 진술이 달라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발부해 주지 않았다. 검찰은 보강수사를 거쳐 두 차례 더 영장을 청구했지만 번번이 기각됐다. 급기야 12월9일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 사이에 유씨가 당시 2억원을 필요로 할 만한 사정이나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곤 하지만, 법조계에선 "압수수색영장도 기각당하는 마당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건 이례적"이란 평가가 많았다. 구속영장 청구 이튿날 유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씨의 부재가 검찰 수사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 검찰은 '대장동 4인방'을 지난달 1, 22일 이미 651억원+α 규모의 배임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긴 이후 당시 성남시 관계자 등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이 후보 등 '윗선' 수사의 동력을 찾으려 애써왔다. 유씨는 그런 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중요한 의사결정의 길목마다 있었기 때문이다.
2011년 성남시설관리공단 기술지원TF단 단장으로 일할 때부터 대장동 개발사업을 챙겨온 유씨는 2015년 3월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1차 심사(절대평가) 때 평가위원장, 2차 심사(상대평가) 때 소위원장을 맡아 화천대유가 참여한 성남의뜰 컨소시엄이 최종 선정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검찰은 '대장동 4인방' 공소장에 당시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심사가 이뤄진 정황을 적시했다.
일각에선 유씨 사망 직후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점, 유족이 유서를 공개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타살설을 제기한다. 음모론은 어디까지나 음모론일 뿐 이를 입증할 만한 근거는 없다.
유씨의 휴대전화나 유서 등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뇌물 혐의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공산이 크지만, 그가 관여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잔여 의문점이나 황 전 사장 사퇴 압박 '윗선'을 규명하는 일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서와 휴대전화 강제 확보를 위해선 유족을 상대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해야 하는 만큼 신중한 기류다. 한 검찰 간부는 "섣부른 '윗선' 소환은 역풍만 부르거나 면죄부를 주는 수사가 될 우려가 있다"며 "유씨가 남긴 기록과 흔적을 톺아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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