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수사' 내세운 공수처,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 관행 되풀이
법조계 "수사 절차상 불가피하지만 무차별적 조회는 삼가야"
(서울=뉴스1) 한유주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기자들의 통신자료를 무더기로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공수처는 현행법상 문제가 없는 수사절차라고 반박했지만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 관행을 되풀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뉴스1 취재기자들을 비롯한 여러 언론사 기자를 상대로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한 명을 상대로 공수처 수사과와 수사2부, 수사3부에서 수 차례 조회한 사실도 확인됐다. '조국 흑서' 저자인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 등 시민사회 인사들의 통신자료도 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언론사찰'이라는 지적까지 나오자 공수처는 입장문을 내고 "단지 가입자 정보를 파악한 적법절차를 언론사찰로 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법원의 허가를 받아 확보한 피의자의 통화 내역에는 통화 상대방의 전화번호만 기재돼 있어,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통신자료를 조회했다는 것이다.
특히 공수처는 수사대상과 관련사건이 무엇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주요 피의자 중에 기자들과 통화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같은 절차는 검경 등 다른 수사기관에서도 동일하게 이뤄지는 것이라고도 항변했다.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에 따르면 통신사는 법원이나 수사기관, 국정원이 요청하면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통신사 가입일 또는 해지일을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통신자료 조회'라 일컫는데 가입자의 통화 일시, 통화개시·종료시간, 통화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통신사실확인자료제공' 제도와 달리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통신사실확인자료제공'과 달리 '통신자료조회'는 당사자에게 조회 사실을 사후 통지하도록 한 절차도 부재하다. 이 때문에 당사자가 직접 통신사에 신청해야만 수사기관의 통신자료조회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범죄수사에서 통신자료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 건수는 증가 추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통신사업자가 검경, 국정원 등 수사기관에 제공한 통신자료는 전화번호 기준으로 292만2382건, 문서 기준으로 51만2468건에 달한다. 공수처는 올해 1월 신설된 기관이라 아직 공개된 자료는 없다.
반면 시민사회는 수사기관이 법원의 허가라는 최소한의 장치없이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해왔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2016년 "경찰, 국정원, 검찰은 물론 군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보·수사기관들이 이동통신사로부터 가입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을 제한없이 제공받아 왔다"며 무단수집 피해자 5백명을 모아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이 헌법의 영장주의에 위배되며, 통신자료를 제공할 경우 당사자에게 사후통지 규정을 두지 않은 게 위헌이란 취지였다.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도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수집 목적과 대상자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사법적 통제가 이뤄지지 않으며 당사자에게 사후 통지하는 절차가 마련되지 않아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그해 헌재에 제출했다. 해당 헌법 소원은 아직 심리중인 상태다.
법조계에서는 통신자료는 초기 수사단계에서 보안을 유지하며 신속히 확보해야 하는 자료인 만큼 법원의 허가를 얻어야할 경우 수사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과도한 저인망식 통신자료 조회는 삼가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추세다. 특히 공수처의 경우 검찰 개혁을 통해 출범한 기관인 만큼 기존의 관행과 달리 대상자를 최소한으로 선별해 진행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수처가 한 사람을 대상으로 수차례 조회를 한 경우도 나오는 데 수사의 편의성을 위해 피해의 최소성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면서 "무차별적으로 일정기간에 통화가 이뤄진 상대를 모두 조회하는 방식은 지양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wh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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