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인재 키우는 '인사 혁신'

김기환 2021. 12. 1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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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삼성·SK 등 잇단 파격인사
'30대 임원·40대 사장' 뉴노멀로
유행 넘어 미래 성장동력 되려면
리더 의지·인사시스템 뒷받침돼야

해마다 이맘때면 익숙한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일자로 회사를 떠나게 됐습니다.” 인사철마다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난다. 올해는 유달리 젊은 임원들의 탄생과 세대교체가 화두가 됐다. 그만큼 기업들의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고 이를 돌파하기 위한 인력 재배치가 필요한 때문일 것이다.

LG그룹은 지난달 25일 임원인사에서 구광모 회장 취임 후 최대 규모의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내년이면 취임 5년 차를 맞는 구 회장은 상무 132명을 신규로 선임했고, 이 가운데 40대 젊은 인재들이 82명으로 62%에 달했다. 파격적인 인사 배경엔 구 회장이 40대라는 점도 있지만 고객가치 혁신으로 실질적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구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기술 진화 속도가 빨라진 글로벌 환경을 감안하여 젊은 인재를 전진 배치해 미래 시장에 대비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김기환 산업부장
최근 삼성전자는 가전(CE)·모바일(IM)·반도체(DS) 부문장을 모두 교체하는 큰 폭의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면적인 인적 쇄신이었다. 삼성이 대표이사를 교체하는 것은 지난 2017년 10월 인사 이후 4년 만이다. 뒤이은 임원인사에서는 40대 부사장, 30대 임원이 대거 발탁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미국 출장에서 돌아와 “냉혹한 현실을 봤다”고 했다. 이런 위기감이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의 세대교체와 ‘젊은 피 수혈’로 이어진 셈이다.

앞서 SK그룹 정기인사에서는 40대 사장이 나왔다. 이를 두고 안팎에선 최태원 회장의 임원 직급 파괴 행보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롯데그룹도 최근 경영 위기론이 대두되는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순혈주의를 깬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마치 주요 그룹이 세대교체의 폭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이러다가 30대 사장이 흔한 스타트업·벤처업계 흐름을 따라가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최근 한 조사를 보면 ‘30대 임원, 40대 사장’이 ‘뉴노멀’이 되는 세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올해 3분기(7∼9월) 국내 30대 그룹 상장사 197개 기업의 임원 7438명(사외이사 제외)을 조사한 결과 1969년 이후 출생한 임원은 3484명(46.8%)으로 집계됐다. 4대 그룹에서는 임원 4280명 중 2081명(48.6%)이 1969년 이후 출생으로, 30대 그룹 평균보다 비중이 높았다. 1969년 이후 출생자들은 X세대, 밀레니얼 세대 등으로 꼽히는 이들이다.

더 이상 연공서열 위주의 굳어진 조직문화로는 빠르게 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주요 대기업의 ‘인사혁신 메시지’는 시의성을 담고 있다. 소비 트렌드는 물론 기업문화를 주도하는 MZ세대를 의식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기업 오너뿐 아니라 임원들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동안 수직적 의사결정과 안정적 고용이 짧은 시간 내 한국 기업의 압축 성장을 가져왔다면, 이제는 수평적 조직문화와 순발력 있는 대응 체제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파격적 인사혁신이 기업문화를 성공적으로 바꿔놓을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일각에서는 젊은 임원들의 등장이 임원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실적과 성과를 강조하다보면 단기간에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사업에 치중하게 되고, 임원들의 역량이 충분히 숙성되고 축적되는 기간이 점점 짧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대기업 임원은 “‘조진조퇴’, 빨리 승진하면 빨리 나간다는 말도 있지 않으냐. 빠른 승진보다는 젊은 사람을 키운다는 긍정적 메시지가 더 부각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술 주기나 소비 트렌드가 빨라지는 건 사실이지만 ‘인재가 기업을 살린다’는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다. 젊은 임원들의 등장이 반갑지만 반짝 유행에 그칠까 우려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이들이 미래 성장동력이 되려면 발탁에 그치지 않고 ‘대표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기업 리더의 의지와 인사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김기환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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