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신제품 개발, 세계가 놀란 '속도'

이새봄 2021. 12. 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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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뉴딜사업단
교수진, 정부에 사업단 제안
초고속 멸균기·스마트 방호복
산학연 협업 1년만에 상용화
방역기술 개발 신산업 창출
경구용 치료제 후보물질 등
중장기 연구과제도 역점 둬

◆ 팬데믹을 기회로 바꾼 K-R&D ④ ◆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초반의 마스크 대란은 완전히 사라졌다. 매일 바꿔 쓰는 마스크 대신 에탄올 스프레이로 소독만 하면 일주일씩 재사용할 수 있는 마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해 온몸을 꽁꽁 둘러싸 '더위와의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의료 현장의 방호복은 '스마트 방호복 냉각 통기 시스템' 덕분에 가볍고 시원해졌다. 의료 현장에서 수시로 사용하는 의료 기구를 10분 만에 멸균할 수 있는 '플라스마 바이러스 멸균기'로 인해 130도 이상의 고온에서 1시간 이상씩 살균해야 했던 번거로움도 줄었다.

병동 부족은 공터만 있으면 일주일 이내로 설치가 가능한 이동형 음압병동으로 해소됐다. 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공간 내부 창문에 음압기를 연결해 특정 구역을 자가격리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자가격리 키트'를 활용하면 된다.

수년 후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이 기술은 대부분 개발이 완료돼 일부 상용화됐거나 시제품이 나와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8월 발족한 KAIST의 코로나 대응 과학기술 뉴딜사업단이 이뤄낸 성과다. KAIST 뉴딜사업단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이겨내기 위해 산학연이 손잡고 필요한 기술을 빠르게 개발하기 위해 설립됐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 확산이 거세지며 KAIST 교수진 사이에서는 위기 극복을 위해 과학자들이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는 공감대가 생겼다. 곧바로 교수 10여 명으로 꾸려진 기획단이 만들어졌고 배충식 기계공학과 교수가 단장을 맡았다. 배 단장은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기술 역량을 총동원해 현실적인 기술을 신속하게 개발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기획단을 꾸렸다"며 "당장의 현실에 대응할 뿐 아니라 과학기술 기반의 방역기술을 개발해서 신산업을 창출하자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속함'에 방점을 둔 만큼 기초 단계부터 시작하는 연구보다 빠르게 상용화할 수 있는 과제를 중심으로 아이디어를 모았고, 1년 반의 시간이 흐르자 추진했던 과제의 상당수가 결실을 맺었다. 플라스마 바이러스 멸균기는 지난해 말 마스크 멸균기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를 받았고, 지난 10월에는 소형 멸균기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2등급 의료기기 인증을 획득했다. 스마트 방호복은 주요 기술을 이전했고, 음압병동은 원자력병원 내 중환자용 음압병동을 비롯해 실제 방역 현장에 적용돼 실효성을 입증받았다.

실험실에서 구현한 성과가 제품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상용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KAIST 뉴딜사업단의 기술들이 이 죽음의 계곡에 내몰리지 않은 비결은 원천기술 개발 단계부터 산업체 연구진이 참여한 데 있다. 배 단장은 "과제를 시작할 때 교수들뿐 아니라 협업 기업까지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시제품을 만드는 시점과 연구개발(R&D) 시점이 같았다"며 "단순한 기초기술 연구가 아니라 개발을 염두에 둔 연구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KAIST 연구팀들이 신속함에 치우쳐 긴 호흡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중장기 과제를 외면한 것은 아니다. 향후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이 잦아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장기적인 R&D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KAIST 판단이다.

이상엽 KAIST 특훈교수가 진행한 '약물 가상 스크리닝 기술' 연구가 대표적이다. 감염병 종식을 위해서는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치료 기간을 단축시키는 경구용 치료제 개발이 시급하다. 이 교수는 "우리가 갖고 있는 시뮬레이션 기법을 약물 재창출(이미 개발 중이거나 개발된 약물 중에서 코로나19 치료제로 활용할 수 있는 약물을 찾아내는 것)에 활용해 보자고 제안했고, 6218종 중에서 치료 후보물질들을 발견했다"며 "코로나19뿐 아니라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해도 이 기술을 적용해 더 빨리, 효과적으로 후보물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사스, 에볼라, 메르스, 코로나19 등 감염병이 평균 4년 주기로 출현하고 있고, 고령 인구도 급속히 늘고 있다"며 "인류의 건강을 위한 연구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장은 "이를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연구 풍토가 조성돼야 하고 특히 연구하는 의사인 의사과학자 양성과 같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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