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춤사위, 소리로 풀어 귀를 사로잡는다

글·사진 이진주 기자 2021. 12. 1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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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음성해설가 도전하는 안무가 겸 무용수 이경구

[경향신문]

현재 국내에서 무용음성해설가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무용인들 중 현역으로 활동하는 안무가·무용수는 이경구씨가 유일하다.
시각장애인에게 무대 해설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분야
대본 작성·성우 발성 등 훈련
9월 ‘무용인 축제’ 때 데뷔
“동작·의상까지 세세한 설명
장애 구분없이 예술 누려야”

무대 위에서 무용수가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몸짓과 이야기는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들에게 공연 관람은 언감생심이다. 이에 시각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처럼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무대 위 춤 동작을 음성으로 해설해주는 서비스가 최근 국내에서도 선을 보였다.

일명 ‘무용음성해설’ 서비스로 영국·미국 등 선진국에선 200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국내는 아직 태동 단계다. 국내의 경우 현대무용을 하는 이경구씨(29)가 무용음성해설가로서 지난 9월 도전에 나섰다. 이씨는 현재 무용음성해설가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무용인들 중 가장 젊다. 또 현역에서 활동하는 안무가·무용수로는 그가 유일하다.

지난 6일 서울 강남의 연습실에서 만난 이씨는 “무용음성해설은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 없이 공연 관람의 접근성을 넓히기 위한 서비스”라며 “시각장애인들이 충분히 작품을 느낄 수 있도록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무용수의 움직임과 무대 공간, 의상 등을 해설자가 말로 세세하게 설명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무용단 ‘고블린파티’ 소속 안무가이자 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무대 위에서만 공연하던 그가 무대 아래서 음성해설가로 나서게 된 이유에 대해 “호기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국비 지원을 받아 진행한 관련 워크숍에 참여했다.

“사실 처음엔 움직임이나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무용공연을 언어로 설명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궁금해서 시작했어요.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모두의 공간인 극장에서 모두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뒤늦은 자각과 그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고요.”

그는 워크숍에서 음성해설 공연을 위한 대본 작성과 전문 성우의 발성 수업 등 심화교육을 받았다. 이후 지난 9월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2021무용인 한마음축제’ 갈라 공연에서 무용음성해설가로 본격 데뷔했다.

통상 해설가는 대본 작성을 위해 자신이 해설할 공연의 안무가와 소통하며 안무 의도와 관객이 꼭 알아야 할 관람 포인트 등을 공유하고 사전 리허설도 진행한다. 본공연이 시작되면 별도로 마련된 부스에 들어가 공연의 흐름에 맞게 대본을 읽고, 해설가의 목소리는 헤드셋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현대무용의 경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다보니 해설을 할 때 객관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상상의 여지를 남길 수 있도록 했어요. 예를 들어 무용수가 두 팔을 들어 위아래로 움직인다면 ‘팔을 새 날개처럼 펄럭인다’고 표현하는 등 일반 관객들도 시각장애인들과 비슷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죠.”

당시 공연이 끝난 후 한 시각장애인 관객은 “공연이 너무 좋았다. 무용수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어 신기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는 “공연을 보는 방식은 달랐지만 함께 감상평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짜릿했다”며 “기회가 된다면 내 공연에도 적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출신인 이씨는 2014년 직접 안무와 춤을 선보인 ‘우주정거장’으로 한국 현대무용협회로부터 신인상을 받았다. 2016년엔 창무예술원 포스트젊은무용예술가로도 선정됐다.

그는 현재 국립현대무용단과 협업한 어린이 무용극 ‘루돌프’, 24~25일 서울 성수아트홀에서 열리는 자신의 공연 ‘숨구멍’ 등을 준비 중이다. 얼마 전에는 모든컴퍼니의 기획공연 ‘피스트(PISTE)’의 음성해설을 맡아 녹음 작업을 했다. 그의 음성해설이 들어간 공연 영상은 조만간 유튜브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이씨는 “한 명의 시각장애인이라도 무용 공연을 보고 싶어한다면 무용음성해설은 분명 의미가 있다”며 “향후 무용음성해설이 모든 공연에 서비스되기 위해선 안무가와 무용수들을 대상으로 한 관련 교육과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인력 충원 등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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