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방호복이 주는 공포..'미소'로 바꾸고 싶었어요
[경향신문]
문신 있는 무례했던 환자
문신 스티커 붙이고 갔더니
웃으며 “약해, 내 건 컬러야”
비협조적인 행동 많이 줄어
병원 무서워하는 아이들도
캐릭터 그림 보더니 ‘활짝’
“환자들이 하루 한 번이라도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방호복에 스티커를 붙여요.”
모든 코로나19 격리병동이 그렇듯,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코로나19 격리병동에도 환자들이 저마다 근심과 걱정을 지고 온다. 하얀 방호복을 뒤집어쓴 의료진이 무서운 어린이부터 밖에 두고 온 손자의 끼니를 걱정하는 할머니, 배 속의 아이가 더 걱정인 임신부까지 각양각색이다. 이곳에 근무하는 백의영 간호사(35)는 환자들이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방호복에 스티커를 부착한다. 어린이 환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스폰지밥이나 라이온킹 같은 만화 캐릭터를 붙이고, 그림을 좋아하는 환자를 위해 고흐와 르누아르의 명화 스티커를 붙인다.
백 간호사는 지난 7월부터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격리병동에 투입됐다. 일반병동에 근무할 때부터 코로나19 대응 훈련을 받았지만 막상 방호복을 입으니 ‘내가 무서운 곳에 들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겁이 났다. 동시에 ‘간호사인 나도 이렇게 무서운데 코로나19에 걸린 환자들은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마음도 생겼다.
간호사에게는 하루 10~11시간을 보내야 하는 병원, 환자에게는 꼬박 열흘을 보내야 하는 병원이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곳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다른 병원 간호사들이 방호복에 그림을 그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도통 그림에는 솜씨가 없어서 궁리 끝에 내놓은 대안이 방호복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었다.
백 간호사가 붙이는 스티커는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환자와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를 나눌 구실이 된다. 비협조적인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긴장을 푸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한번은 온몸에 문신을 한 환자가 그가 근무하는 병동에 입원했다. 의료진에게 유난히 무례한 환자였다. 백 간호사는 하루는 작심을 하고 용 문신 스티커를 붙이고 들어갔다. 그러자 환자가 웃으면서 “그건 약해. 흑백이잖아. 내 것은 컬러야”라고 받아쳤다. 그 뒤로 의료진에게 비협조적으로 구는 일이 훨씬 줄어들었다고 한다.
스티커를 붙이지 못하는 ‘급박한 상황’도 있다. 방호복을 입고 3겹의 장갑까지 끼는 데까지 아무리 빨라도 7분 정도가 소요된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거나 긴박한 상황에서는 스티커를 붙일 여유가 없다. 최근에는 병동에 코로나19에 감염된 임산부들이 늘어났다. 백 간호사는 “산모들은 아이 때문에 더 걱정이 많다. 본인 탓을 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당신이 잘못해서, 당신만 이상한 사람이라서 걸린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며 “코로나19는 이미 보편적인 상황이고 도와줄 사람들도 있으니 너무 자책하거나 겁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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