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오합지왕
[경향신문]
교수신문은 2년 전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택했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이다. 두 머리 중 한쪽은 매일 맛있는 것만 먹었다. 이를 질투한 다른 한쪽은 어느 날 맛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혼자 먹으려 했다. 한쪽 머리는 그 열매에 독이 든 것을 알고 있었으나 말리지 않았다. 두 머리는 한 몸이었기에 결국 둘 다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2019년 온갖 사회적 갈등이 불거지면서 교수들은 공동운명체를 강조한 공명지조의 교훈을 선택했다.
최근 국민의힘 대선 캠프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100조원대로 거론되는 코로나19 손실보상을 둘러싼 이견이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대선 후 보상을 주장한 반면 윤석열 후보는 ‘대선 전 최대한 빠르게’ 하자고 했다. 이준석 대표는 김 위원장의 의견에 동조했고, 김병준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은 ‘후보가 말씀하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중요한 시기에 한 당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같은 날 서로 다른 메시지가 나오는가 하면 각 조직의 역할이 겹치는 부분도 발생했다. 급기야 김 총괄위원장은 13일 “(정책개발) 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고 했다.
머리가 여럿이다 보니 주인공이 누군지 애매하다. 윤 후보는 지난 8일 청년문화예술인 간담회에서 청년들이 질문할 때마다 이 대표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중요 정책에 대해서는 김 총괄위원장이 윤 후보를 대신한다. 이번 대선이 ‘이재명 대 김종인의 대결’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힘이나 선대위 관계자들은 윤 후보와 김 총괄위원장 사이에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곤혹스러울 것이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이런 국민의힘 상황을 ‘오합지왕’이라고 비꼬았다. 이 전 대표는 “전부 다 왕 노릇을 하다 보니까, 저게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모르겠다”며 오합지졸에 빗댄 것이다. 국민의힘은 선대위를 꾸리는 과정에서 극심한 혼란 끝에 공명조의 길을 선택했다. 이런저런 세력을 다 끌어모으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선 후 실행할 공약이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차기 정부를 이끌 진정한 머리가 누구인지는 알고 뽑아야 할 것 아닌가.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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