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돌봄 법제화가 필요하다

한겨레 2021. 12. 13. 17: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코앞에 닥친 초고령사회
지난 9월 대구시 서구 일대에서 서구제일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들이 식료품과 생필품을 들고 관내 후원 가정들을 찾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석재은 |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혼자 사시는 80살 노인이 있다. 여러가지 크고 작은 만성질환을 갖고 있지만 혼자서 거동은 해오셨다. 최근 근력이 떨어지면서 식자재를 사러 식료품 가게에 다녀오는 것이 큰일이다. 한참 걸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주문은 상상도 못 한다. 자식들에게 부담 줄 것 같아 그냥 견딘다. 집에 있는 것으로 간신히 끼니를 때울 때가 많은데, 요즘 들어 부쩍 어지럽고 인지능력도 떨어지고 있다. 병원에 갔더니 영양결핍이란다. 영양을 잘 챙겨야 한다는 의사선생님 당부를 들었지만, 쉽지 않다. 평범한 우리 사회 어르신들의 생활상이다.

지난 9일 발표된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고령화율 20%에 이르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65살 이상 고령인구는 2024년 1000만명을 넘어서고, 85살 이상 인구는 2023년 100만명을 넘어선다. 2047년에는 1인 노인가구의 비중이 전체 가구의 20%에 이를 것으로 통계청은 내다봤다. 이제 고령인구를 기준으로 우리 사회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정부는 거동불편 등으로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과 장애인 등이 살던 곳에서 삶의 질을 유지하며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 기반의 통합적 돌봄체계(지역사회 통합돌봄)를 구축했다. 먹거리(영양) 돌봄은 일상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중요한 영역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살펴보면 무엇보다 첫째, 먹거리 돌봄이 건강한 노화와 삶의 질 향상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련 시범사업들에서 먹거리 돌봄에 대한 체감 만족도 및 삶의 질 향상 기여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서울시는 고령의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만성질환식, 신장질환식, 저작곤란식 등을 제공한 바 있다. 먹거리 돌봄은 허약 및 만성질환 관리·지원으로 노쇠화를 지연하고, 인지기능 저하를 예방하며, 소화기능 및 저작기능 저하, 삼킴장애 등 섭식장애에 대응한 맞춤 영양 돌봄을 가능하게 한다. 먹거리 돌봄을 통해 고령 만성질환자가 자립적인 식생활을 영위하고, 건강 악화 예방 및 건강 증진을 위해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둘째, 먹거리 돌봄은 사회적 고립 방지의 매개체로서도 중요하다. 안부 확인 및 건강상태의 지속적 점검이 가능하며, 정기적인 공동 식사를 통한 사회적 관계의 지속이 가능하다. 셋째, 먹거리 돌봄은 사회적으로 비용효과적이다. 건강노화 기간 연장을 통한 요양상태 진입 지연으로 요양비용 절감에 기여할 수 있으며, 만성질환 관리로 의료비 절감에 기여할 수 있다. 넷째, 먹거리 돌봄은 건강한 먹거리의 지속가능한 생산 및 공급, 고령 친화 식품산업의 활성화 등을 통해 다양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다섯째, 먹거리 돌봄은 지역사회 기반 건강한 공동체 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 안심 먹거리 생산-유통-소비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며, 생산자와 소비자의 안심 먹거리 공동체를 조성하고, 지역사회 주민의 먹거리 돌봄 참여 속에서 지역사회 먹거리 돌봄 공동체 조성에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먹거리 돌봄을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구성하는 전문적 돌봄 분야의 하나로 인정하고 체계적인 사회적 지원체계를 마련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 통합돌봄법(안)에 통합돌봄의 주요 사업으로 먹거리 돌봄을 명기하여 법제화하고, 사회적 재정지원 방안을 제도화하여야 한다. 법 제정 이후에는 지방자치단체별 조례에 주요 사업으로 먹거리 돌봄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기준을 명기하는 표준 조례안의 확산이 필요하다.

13일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공동주최한 지역사회 먹거리 돌봄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나온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와 제안이 돌봄 정책에 반영되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지역사회가 되기 바란다.

먹거리 돌봄의 사회제도화는 초고령사회를 맞이하는 우리 사회가 시급히 갖추어야 할 기본 인프라이다. 먹거리 돌봄은 건강수명을 연장하여 건강한 초고령사회로 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대선 후보들도 관심 갖고 챙겨주시길 기대한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