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반려인 형들 이야기

박현철 2021. 12. 13. 17: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박현철 | 콘텐츠기획부장

이유가 호기심이든 측은지심이든, 동물과 함께 살면 많은 것들이 바뀐다. 우선 동물 역시 먹고 자고 노는 데 많은 돈이 든다는 걸 알게 된다. 차라리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들, 아픈 덴 없나 살피고 마음 졸이는 일들 역시 많다는 것도 곧 알게 된다. 유기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다음은 남들이 궁금해지는 단계다. 다른 반려인은, 다른 동물들은 어떻게 살까, 하고.

그러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는 것들이 늘어난다. 우리 개, 고양이는 유기견, 유기묘인가 아닌가? 유기견·묘라면 그들은 왜, 어떻게 유기되었나? 유기견·묘이든 아니든 그들의 부모는 누구이고, 그 부모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나? 이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한국의 개 반려인은 식용견 문제에, 고양이 반려인은 길고양이 문제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번뇌의 시간’. 나와 함께 사는 개, 고양이가 아닌 다른 동물들의 삶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공장식 축산에 희생되는, 멸종 위기에 놓인, 실험에 동원되는 무수한 동물들과 그들의 죽음. 그럼에도 당장 육식을, 소비를, 실험을 멈추지 못하는 나를 비롯한 인간들.

동물들에 대한 ‘마음의 빚’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그 빚이 무거워 탈육식을 하는 사람도 있고, 유기동물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도 있다. 동물원에 가지 않겠다 다짐하는 사람도 있고, 함부로 동물과 함께 살지 않으리라 마음먹는 사람도 있다. 깨달음의 정도와 이후 실천의 강도는 다를지라도 한번 깨닫게 되면 바뀐다. 생각이 바뀌든, 행동이 바뀌든.

“반려견, 식용견이 따로 있다”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의 말을 듣고, 그의 반려생활은 어느 단계에서 멈춰버렸을까 궁금했다. 그의 이 말은 ‘식용견은 그래도(처참하게 키우고 잔인하게 도살해도) 된다’는 믿음에서 나온 말이겠으나 더 놀라운 건 따로 있다.

그는 한때 유기견이었던 개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그 유기견들의 ‘오지 않은 미래’를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을까. 만약 그 유기견들이 반려인을 끝내 만나지 못했다면? 이른바 애완견과 식용견 구분 없이 수많은 개들이 뜬장에 갇혀 있는 사진을 그는 한번도 본 적이 없을까. 뜬장 속 모든 개들이 그가 말하는 ‘식용견’일까. 대통령이 되겠다는 반려인 윤석열은 정말 이런 것들을 고민해본 적 없을까. 왜 없을까.

같은 이유로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용진의 반려생활도 궁금하다. 그는 스탠더드 푸들이라는 ‘품종견’ 여럿과 함께 산다. 2010년 자신의 반려견 이름을 딴 반려용품 매장 ‘몰리스펫샵’도 열었다. 신세계의 쇼핑몰 스타필드에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이유도 반려인 정용진의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스타그램을 통한 소통에 한창이던 그는 지난 5월 샥스핀 요리 사진을 올렸다. 신세계그룹 호텔 체인이 새로 개장한 중식당 홍보를 하면서 상어 지느러미로 만든 요리 사진을 올린 것. 샥스핀은 살아 있는 상어를 지느러미만 잘라낸 뒤 바다에 버리는 잔인한 어획 방식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퇴출 중이다. ‘종주국’ 중국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한겨레> 기후변화팀이 기사를 썼다. 호텔은 “대체 메뉴를 찾겠다”고 했다.

그 일주일 뒤 정용진은 샥스핀 사진을 또 올렸다. 지난 11월엔 자신이 직접 요리한 ‘샥스핀탕면’을 찍어 올린 한 맛집 블로거의 사진을 본인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기도 했다. 그는 상어 지느러미 요리의 퇴출에 대해 다른 생각이 있는 걸까. 윤석열이 말한 반려견과 식용견처럼, ‘나와 고객의 반려견’과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바다의 상어는 그에겐 같은 동물이 아닌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난 언론이 떠든다고 겁먹는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까. 정용진은 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공직자나 공직자 후보가 아니어서 사회적 의무 따윈 알 바 아니라 생각한다면. 윤석열에게도 정용진에게도 의무를 강요하는 건 아니다. 궁금할 뿐이다. 그들도 반려인이(라)기에.

덧붙여, 둘의 공통점을 하나 더 꼽자면 둘 다 석열이 형, 용진이 형으로 불리는 걸 원하거나 즐긴다는 사실. 형, 형 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남자 후배들만 불러 모아 개고기와 폭탄주를 돌려 먹던 옛날 선배들이 생각난다.

fkcoo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