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추싱 미 증시 철수, 자본시장 '분리' 신호탄인가

박현 2021. 12. 13. 17: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현의 G2 기술패권]박현의 G2 기술패권 _08
중국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 디디추싱은 지난 6월30일 중국 규제당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당시 뉴욕 증권거래소의 전광판에 나타난 디디추싱의 로고(DiDi).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 당시 중국에 대한 무차별적 공세에도 불구하고 20년간 이어져온 미-중 자본시장의 공존 기조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중국 기업들의 자본 조달은 계속됐으며, 미국 투자자들은 중국 경제 급성장과 중국 아이티 기업 붐이 가져다준 과실을 따먹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디디추싱 사건이 판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박현

논설위원. 1994년부터 경제·국제·사회부에서 주로 일했으며, 워싱턴특파원·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 등을 지냈다. 특파원 시절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산복합체 등을 취재했으며, 2015년 미국의 사드 배치 의도를 폭로한 보도로 관훈언론상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첨단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발전상을 현장 취재했다. G2의 패권 경쟁이 한국 경제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hyun21@hani.co.kr

2018년 여름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디디추싱 차량을 이용한 적이 있다. 디디추싱은 중국 최대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로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곳이다. 기자가 머물던 호텔에서 시내 음식점을 가는데 베이징에 사는 지인은 스마트폰 앱으로 디디추싱 택시를 호출했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택시가 도착했다. 새 차인 듯싶었고, 내부는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서울의 낡고 다소 칙칙한 택시를 많이 타봤던 기자에겐 신선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지인은 카드 결제도 없이 그냥 내렸다. 자신의 모바일 결제서비스 계정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간다고 했다. 2012년 설립된 디디추싱이 2016년 우버를 중국 시장에서 철수시킨 이유를 알 만했다.

디디추싱은 올해 6월30일 중국 규제당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호기롭게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기업공개(IPO)로 조달한 금액이 무려 44억달러(5조원)에 이른다. 2014년 뉴욕 증시에 입성한 알리바바(공모금액 250억달러) 이후 최대 규모다. 그런 디디추싱이 반년도 되지 않은 지난 3일 뉴욕 증시에서 상장 폐지를 결정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디디추싱 주가는 3일 하루 동안 22% 폭락했으며, 상장 이후 반토막이 났다. 트럼프 시대 최대 피해 기업이 화웨이라면,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미-중 갈등의 최대 피해 기업은 디디추싱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디디추싱의 뉴욕 증시 상장 이후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이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초래한 피해도 문제지만, 미-중 간 자본시장 디커플링(분리)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디디추싱의 상장이 문제가 된 이후 지난 반년간 중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미국 증시 상장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미국 증시는 2000년대 초부터 중국 아이티 기업들의 대표적인 자본 조달 창구가 돼왔다. 지금까지 248개 중국 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했으며, 올해 5월 기준 이들의 시가총액은 2조1천억달러(2481조원)에 이른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중국에 대한 무차별적 공세에도 불구하고 20년간 이어져온 미-중 자본시장의 공존 기조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중국 기업들의 자본 조달은 계속됐으며, 미국 투자자들은 중국 경제 급성장과 중국 아이티 기업 붐이 가져다준 과실을 따먹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디디추싱 사건이 판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그 전에도 차이나텔레콤 등 일부 중국 기업들의 상장 폐지가 있었지만 대부분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 리스크나 인권침해 연루를 이유로 제재 대상 기업으로 지목한 영향이 컸다. 그러나 디디추싱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먼저, 중국 정부의 압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올해 6월 중국 내 데이터의 국외 이전을 제한하는 내용의 데이터 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중국 인터넷 기업들이 수집·저장하고 있는 데이터들이 잠재적으로 국가안보 리스크와 직결된다는 게 이유였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도 6월 공개한 ‘자동차 데이터 안전에 관한 규정' 초안에서 군사 구역 등 민감한 지역의 사람과 차량의 유동 현황, 국가 공표 지도보다 정밀도가 높은 측량 데이터 등을 ‘중요 데이터'로 분류하고, 이를 국경 밖으로 가져가려면 반드시 당국의 검토를 거치도록 했다. 중국 당국은 디디추싱이 뉴욕 증시 상장을 강행한 지 이틀 만에 디디추싱의 데이터 보안 조사에 착수하고, 앱스토어에서 디디추싱 앱을 지우도록 하는 조처까지 취했다.

또한 중국은 7월에 100만명 이상 사용자의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에 대해 외국 증시 상장 전에 당국의 검토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규정도 발표했다. 알리바바 등 대부분의 아이티 기업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대대적인 데이터 보안 강화 조처가 잇따르자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주가는 폭락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금융분석업체 팩트셋의 자료를 인용해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7월 한달 동안에만 4천억달러(약 473조원) 증발했다”고 추산했다.

미국 정부도 압박에 가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퇴임 전인 지난해 12월18일 ‘외국회사문책법안’(HFCAA)에 서명을 했다. 이 법은 미국에 상장된 외국 기업은 외국 정부 소유가 아니고 외국 정부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외국 회계법인이 상장사 회계감사를 하면서 취득한 회계 관련 증거자료에 대해 미국 규제당국이 3년 연속 검사를 하지 못할 경우 증권 거래를 금지한다. 이미 미·중은 거의 10년간 이 회계 검사권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는데 협상에 진척이 없었다. 중국 쪽은 이런 ‘무제한’ 자료 접근권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이라며 반발해왔다. 데이터를 많이 보유한 인터넷 기업의 경우, 회계 증거자료에는 고객 정보뿐만 아니라 회사와 정부기관 간에 오간 이메일 등 원자료가 포함돼 있다.

중국 기업들이 이용해온 이른바 ‘가변이익실체’(VIE)라는 우회 상장 방식에 대해 미국 규제당국이 경고하고 나선 점도 문제가 됐다. 중국은 지금도 인터넷·통신 등 아이티 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고 있는데, 가변이익실체는 이를 편법으로 회피하려는 것이다. 케이맨군도 같은 조세회피처에 지주회사를 설립한 뒤 이 지주회사가 중국 내에 외자기업을 설립해 중국 기업과 다양한 계약을 맺는 방식을 취한다. 미국 투자자들은 중국 기업의 지분을 직접 취득하지 않으면서 이런 계약 방식으로 이익 배분을 보장받는다. 2000년 시나닷컴이 이 방식으로 나스닥에 첫 우회 상장한 이후 알리바바·바이두·텐센트 등 대부분의 중국 기업들이 이 방식을 따랐다. 정상적으로는 미국 증시 상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증권규제당국 수장인 게리 겐슬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지난 9월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문에서 가변이익실체 모델의 유효성에 의문을 던지는 지적을 해 투자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런 계약 방식은 사실상 미국 투자자들에게 (중국) 회사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일부 투자자들은 중국에서 영업하는 회사라기보다는 케이맨군도의 명의뿐인 회사에 자신들의 돈을 투자하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해 우려스럽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미·중이 경제적 상호의존을 심화하며 ‘윈윈’을 해온 지난 20년간은 이런 회색지대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빈틈을 이용해 중국 아이티 기업들은 세계 최대 자본시장인 미국 증시에서 성장에 필요한 ‘땔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중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이런 약한 고리에서부터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렇게 규제 강화 또는 경고가 이어지자 중국 기업들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2019년 알리바바가 뉴욕 증권거래소에 잔류하면서도 홍콩 증권거래소에 재상장하는 결정을 내린 이후 다른 기업들도 뒤따르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16개 기업이 홍콩 증시에 재상장했다. 홍콩 증시를 추가적인 자본 조달 창구로 이용하면서 동시에 미국 증시에서 퇴출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려는 의도다. 이는 미국 투자자들에게도 ‘안전판’ 구실을 할 수 있다. 미국 증시에서 상장 폐지될 경우 홍콩 증시에 상장된 주식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미국 기관투자자들은 이미 홍콩 증시에 상장된 증권과 교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컨대, 뉴욕 증시의 알리바바 주식을 홍콩 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 주식으로 교환하는 것이다. 다만 일반 투자자들은 아직 이런 단계에까지 나아가지는 않고 있다.

자본시장 참여자들은 본래 차익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려는 성향이 강하지만, 정부 규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극도로 싫어한다. 미·중 양국이 모두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가 이어진다면 중국 아이티 기업들의 미국 증시 상장을 통한 윈윈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미-중 간 자본 거래에 기업들의 직접 상장 방식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 기관투자자들이 운용하는 투자펀드를 통해 중국 증시에 상장된 아이티 기업에 간접투자하는 방식도 상당히 보편화돼 있다. 미-중 패권경쟁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런 간접투자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디디추싱 사건을 계기로 미-중 간 자본시장 공존 모델의 중요한 한축이 타격을 받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