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금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

한겨레 2021. 12. 1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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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서울 명동 거리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숨&결] 정민석 | 인권재단 사람 사무처장

거리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를 듣거나 사랑의 온도탑을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시기가 되었다. 익숙해진 겨울 풍경이다. 기업에선 각종 시설에 방문해 불우 이웃 돕기 성금이나 위문품을 전달할 것이고, 언론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남을 돕는 감동적인 사례를 발굴해 ‘아직 세상이 살 만하구나’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기 바쁠 것이다. 누군가는 김장을 담가 나눌 것이고, 또 누군가는 연탄 배달을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산타가 되어 취약계층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할 것이다. 사람들의 선한 마음들이 모인다는 것은 뜻깊은 일일 수 있겠으나, 졸지에 불우 이웃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사진 한컷 후원의 증거자료로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인권단체들도 연말연시가 되면 후원의 밤을 개최하거나 사업비와 운영비 마련을 위한 모금 캠페인을 진행한다. 코로나19 이전 같으면 후원주점, 바자회같이 사람들이 가득한 시끌벅적한 오프라인 행사들이 열렸을 텐데, 온라인으로 후원자들을 만날 수밖에 없으니 행사를 주최하는 쪽도, 참여하는 쪽도 아쉬운 마음이 들 것이다. 박봉의 엔지오(NGO) 활동가로 살면, 누군가의 후원 제안이 사실 부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로 인해 후원금이 정체되어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단체들이 존재하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인권이 그나마 지켜지고 있다고 믿기에 이번 연말에도 기꺼이 힘을 보태려 한다.

민간 지원금이 충분치 않다 보니 모금은 단체 운영에 필수적인 활동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사업을 기획했다고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 사실 모금은 기부자와의 약속이다. 모금은 당신 혼자 이룰 수 없는 꿈을 함께 이루자는 제안이고, 이 과정에서 우리 편이 되어줄 든든한 지지자를 만날 수 있다. 돈을 모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목표 달성까지 기부자와 끊임없는 소통이 전제되어야 한다. 위문품 10개를 시설에 입소한 사람 10명에게 전달하겠다는 약속은 쉽겠지만,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그 자체로 추상적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인권단체가 진행하는 모금이 어려운 이유다.

또한 기부금을 모은다는 것은 책임과 의무가 뒤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기부금 운영에 대한 사회적 눈높이가 높아졌고, 엄격한 규제로만 대응하는 제도와 관행이 유지되는 한 모금은 그 자체로 쉽지 않다. 소수의 인원이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모금 캠페인을 기획하고 후원을 제안하는 활동은 더더욱 힘들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앞 농성을 하면서 모금을 병행하기 어렵고, 전국 장애인 시설의 인권침해 상황을 감시하는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후원을 제안하기 쉽지 않다.

지금도 많은 인권단체에서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곧 다양한 꿈들이 영그는 과정이고, 기부자를 만났을 때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고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정기후원 참여를 제안하고 있고, 인권재단 사람은 인권센터 설립 모금을 진행 중이며, 다산인권센터는 온풍기와 앰프를 구입하기 위해 귤 나눔을 하고 있다. 용산나눔의집은 미등록 이주 난민 아동을 위한 깜짝 산타 선물 모금을, 홈리스행동은 홈리스를 위한 방한용품 마련비와 여성 홈리스 긴급 숙박비 등을 모금하고 있다.

이제는 불우 이웃의 딱한 처지와 환경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불우한 상황에 왜 놓였는지 질문하고, 개인의 탓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해 생긴 문제라는 점, 이들 또한 보편적 인권을 누릴 주체임을 알리는 모금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길 희망한다. 당장 손에 잡히는 꿈이 아니더라도 목표를 달성했을 때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모금, 연말연시 사람들의 선한 마음이 세상을 함께 바꾸자는 제안에도 닿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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