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국립현대미술관에 15만원짜리 밥집이?..국립중앙박물관에도 곧 입점

김종목 기자 2021. 12. 1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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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푸드코트 자리에 고급한정식집이 입점했다. 점심·저녁 코스 메뉴만 판다. 저녁 주방장 스페셜 가격은 1인당 15만원이다. 이 고급한정식집은 곧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들어간다. 미술계 일각에선 시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 미술관·박물관의 상업화와 공공기관의 정체성 문제를 지적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입점 음식점은 ‘두레’다. 서울 인사동에서 한정식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곳이다.

‘셰프 스페셜’이란 이름의 저녁 상차림은 1인당 15만원이다. 죽에서 계절 회, 산적, 채끝등심, 보리굴비 등이다. 디저트와 차까지 15개 코스로 이어진다. 점심 저녁 상차림은 ‘한상차림 국화’로 5만5000원, 점심 상차림 한상차림 난초는 3만8000원이다.

인사동의 다른 한정식집보다 가격대가 높은데, 두레 국립현대미술관점 가격은 두레 인사동점보다 비싸다. 두레 인사점 정식은 최하가 2만7500원, 최고가 13만7500원이다.

이 식당은 15개의 별실을 갖추고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소격동 165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푸드코트(교육동 1층 일부) 근린생활시설’로 입찰 공고가 나갔다. 면적은 575.79㎡(174.18평), 임대기간은 5년이다. 제한경쟁 방식 입찰을 진행했다. 세 군데가 지원했다. 낙찰가는 연 임대료 5670만원이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소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입점한 고급 한정식집 ‘두레’의 입구. 이 식당에서는 가장 싼 음식이 3만5000원, 가장 비싼 음식이 15만원 코스요리이다. 김종목 기자

재단법인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단이 관리한다. 이 재단 이사장은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다. 재단 관계자는 “국유재산법에 따라 온비드에 입찰 공고를 냈다. 세 업체가 입찰했다. 문화재단과 미술관 평가위원들이 채점했다. 고급 음식점을 입점시켰다기보다 미술관에 맞는 음식점을 선정한 것”이라고 했다.

입찰 공고문을 보면 식당운영계획 30점, 시설투자계획 25점, 일반현황 및 운영실적 15점, 일반현황 및 운영실적 5점 등이다. 식당운영계획 골자는 ‘관람객의 기호·성향 및 미술관의 차별화를 고려한 메뉴운영계획’인데, 배점이 가장 높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부 경천사탑 식당 자리에 두레가 입점한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 홈페이지를 보면 12월 중 입점한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 관계자는 “최근 계약을 완료했다. 낙찰가는 홈페이지를 보라”고 했다. 홈페이지엔 ‘국립중앙박물관 <경천사탑 식당> 신규 위탁운영자 선정 입찰 재공고(긴급)’만 떠 있을 뿐 낙찰에 관한 정보는 없다. ‘공공자산 온라인 처분 플랫폼’인 온비드엔 경천사탑 식당 입찰 최저가만 기재됐다. 연 임대료 2억1773만3650원이다.

미술평론가 홍경한씨는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렵고 부쩍 오른 물가에 시민들이 고통받는 시점에서 국립 문화 중심 기관에 고급 한정식집이 웬 말인가 싶다. 일부 부유한 자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 먹는 것에서조차 차별과 계급이 존재하고, 박탈감을 조성하는 시설이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간에 입점하는 게 바람직한가”라고 말했다. 이어 “미술관에 맞는 음식점을 선정한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럼 더 많은 이들이 가볍게 이용할 수 있는 음식점을 입점시키면 미술관 격에 맞지 않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미술관의 격은 돈 많은 누군가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입점한 한정식 식당 ‘두레’의 메뉴판. 김종목 기자

홍씨는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단이 지난해 11월 연간 약 1억원을 지급받는 조건으로 임대 계약을 체결한 유명 카페 체인 ‘테라로사 커피’ 문제도 지적했다. “이 공간의 문제는 공용 공간 입구를 카페 전용 출입구로 변경하면서 미술관 마당과 전시 공간 간 연결을 차단했다는 것이다. 채광이 특색이던 통창을 가벽으로 거의 가려 조망권도 침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관 외벽에 카페 간판을 내걸었는데, 카페가 미술관 부속 시설처럼 보이도록 했다. 공유공간을 제한하면서 관람 편의와 문화공간 향유의 기회를 축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재단 이사장을 겸하는 윤범모 관장이 ‘민중미술’ 계열 인사라는 점이 아이로니컬할 뿐”이라고도 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공공기관에 입점한 고급음식점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고 했다. 정씨는 “미술관에 와서 부자처럼 비싼 밥 한끼 먹어보자는 사람도 있다. 단, 고급음식점을 둔다면, 아이들 데리고 스파게티나 김밥 한두 줄 사 먹을 수 있는 공간도 함께 있어야 한다”며 “공공 미술관이 ‘최소한 이 정도는 돈 내고 먹을 사람이나 오라’는 식의 느낌을 줘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씨도 “이참에 미술관의 건축 문제도 함께 아울러 봐야 한다. 현재 카페도 원해 계획된 장소가 아니라 임의로 편의상 카페를 임대하면서 동선이 엉켜버린 것이다. 설계 당시 이런 점들이 고려되지 않은 게 아쉽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입점한 테라로사 카페. 전문가들은 미술관 외벽에 카페 간판을 내걸었는데, 카페가 미술관 부속 시설처럼 보이도록 한 점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종목 기자

두레는 지난 10월 말 개점하면서 김치찌개(1만2000원), 육개장(1만4000원), 비빔밥(1만4000원) 등 1만원대 단품 식사 메뉴를 뒀다. 한달도 안 돼 이 메뉴들은 사라졌고, 코스 요리와 일품 요리만 남았다.

지역 공공 미술관에서 일하는 A씨는 “공공 미술관·박물관은 공공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많은 시민이 쉽게 공유할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공공 박물관에 근무하는 B씨는 “김영란법 식사 대접 한도가 3만원인데, 공공기관이 3만8000원짜리 코스로 시작하는 식당을 입점시킨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12일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전을 보러 자녀 3명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은 오모씨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아이들과 먹을 데가 마땅치 않다. 저런 노골적인 상업시설이 미술관 건물에 든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레 국립현대미술관점은 이미 정치권과 문화예술계 고위 인사들의 밥자리로 애용되고 있다. C씨는 “최근 현직 장관 D씨와 여권 최고위급 정치인 E씨가 이곳에서 식사하는 걸 우연히 봤다. 밥값은 누가 내나 싶었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단은 경향신문 취재 뒤 “내년 1월부터 1만원대 메뉴를 되살리는 걸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2002~2012년 서울역사박물관에도 유명 한식당 ‘콩두’가 입점했다. 이 식당은 서울역사박물관 테라스도 독점했다. 당시에도 공공성과 공간 활용 문제가 나왔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12년 7월 콩두를 내보내고, 그 자리에 교육장과 푸드코트를 설치했다.

※15일 ‘식당은 15개의 별실을 갖추고 있다’를 추가했습니다. ‘국현’, ‘중박’ 줄임말에 대한 독자 지적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수정했습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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