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칼럼] 민주주의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성한용 2021. 12. 1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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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칼럼]"'경제의 인간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의장님의 철학은 불평등과 부정의로부터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필생의 과업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가꾸고 경제적 불평등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몫입니다."
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기리는 ‘김근태기념도서관’이 지난 4일 개관했다. 장영달 김근태재단 이사장(왼쪽) 등이 김 전 의장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성한용 | 선임기자

서울 도봉구 도봉산길 14에 ‘김근태기념도서관’이 생겼다. 전철 4호선 쌍문역에서 141번 버스를 타고 아홉 정거장을 가면 도서관 바로 앞이다. 전철 1호선과 7호선 도봉산역에서 500m 정도 걸어가도 된다.

도봉산과 수락산이 마주 보는 동네에 3층짜리 예쁘고 아담한 건물을 지었다. 도서관이지만 책만 읽는 곳은 아니다. 도서, 기록, 전시를 위한 공간이다. 마을 사람들을 위한 문화센터 같은 장소라고 보면 된다.

민주주의자 김근태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다. 그의 삶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묶여 있었다. 박정희 독재로 민주주의가 짓눌릴 때 학생 시위를 배후 조종한 혐의로 7년간 도망 다녔다. 전두환 독재로 민주주의가 죽어갈 때 죽음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다.

현실 정치에 참여한 김근태는 1996년 국회의원이 됐다.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여당 의원이 됐다. 세상을 바꿀 기회를 잡은 것이다. 재선·삼선 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원내대표, 당대표를 했다.

그는 민주적 시장경제와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안에서 김근태의 목소리는 늘 소수 의견이었다. 장관을 할 때 대구 어린이 장롱 아사 사건이 터졌다. 큰 충격을 받고 이런 글을 남겼다.

“날로 심화하는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 양극화 현상을 뒤로 제쳐두고도 과연 우리 사회가 계속 전진할 수 있을까? 근저에서 분열되어 있고 낯설어하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구조를 갖고서도 우리 사회가 정말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는 것일까? 그러고도 시장경제가 훌륭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것일까?”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참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김근태는 일패도지(一敗塗地)라고 했다.

“중산층·서민의 삶이 개선되지 않은 탓에 담론의 투쟁에서 패배했다. 지지층이 대부분 떠나고 우리는 완전히 ‘거지’가 돼버렸다. 정권교체는 우리만의 무기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상대의 무기가 됐다. 국민의 눈에 우리도 기득권층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나를 비롯한 민주화운동 출신들은 과도한 도덕적 자신감 때문에 오만하게 비쳤고 결국 고립당했다.”

“국가경제와 국민경제를 구분하지 못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중산층·서민에게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국가경제가 좋아졌는데 왜 인정하지 않느냐’고 윽박질렀다.”

김근태는 2008년 4월 총선에서 뉴라이트 출신 신지호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했다. 김근태는 담담했다.

“근본적인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에 대해 더 이상 보상을 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둘째, 민주화 세력이 아파트 분양원가나 국민연금 등 민생 문제에서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이 책임을 물은 것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촛불시위가 일어났다. 금융위기가 터졌다. 2009년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김근태는 공부 모임을 꾸렸다. 그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어쩌면 2012년에 우리에게 다시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실력을 갖추지 못한 채 집권하면 또 실패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김근태는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았다. 2011년 뇌정맥 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2012년을 점령하라”는 마지막 글을 남겼다. 2012년을 점령한 것은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4년 반, 문재인 대통령 4년 반이 흘렀다. 그래서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공정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를 “약탈 정권”이라고 부르는 전직 검찰총장이 차기 대통령을 노리고 있다. 김근태가 살아 있었다면 이 기막힌 상황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

이재명 후보가 김근태기념도서관 개관에 대해 이런 글을 썼다.

“‘경제의 인간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의장님의 철학은 불평등과 부정의로부터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필생의 과업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가꾸고 경제적 불평등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몫입니다.”

김근태의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해와 실천은 차원이 다르다. 이재명 후보가 잘할 수 있을까? 김근태의 철학을 이어받아 실질적 의미의 민주주의를 되살려 낼 수 있을까?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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