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석열 '사람들이 하는 정치'의 조건

기자 2021. 12. 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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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논설위원

선대위 구성 콩가루 조짐 보이자

통합 원칙外 양보하는 뚝심 발휘

외연 확장과 내부 단합 탄력 받아

유권자 선택은 선대위 아닌 후보

대선 86일 앞 비전·리더십 빈약

尹만이 선택에 확신 줄 수 있어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는 출범 전 ‘콩가루 조직’이 될 조짐을 보였다. 먼저 발표된 본부장급 면면은 ‘라떼맨’으로 채워졌다. 그나마 1명은, 자녀 채용 비리로 2심에서 유죄를 받은 이력 때문에 이틀 만에 하차했다. 김종인은 독상을 요구하며 버티기에 들어갔고 이준석은 당무를 이탈하고 지방을 배회했다. 당 안팎에서 비판과 우려가 쏟아졌다. 공룡선대위의 대대적 혁신에 나선 이재명과 대비되면서 정치 초보 윤석열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왔다. 곧 윤석열과 이재명 지지율이 역전될 것이라는 전망도 잇달았다. 그러나 윤석열은 별다른 동요 없이 “두고 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당 대표의 당무 이탈 4일째이던 날 윤석열은 이준석과 울산에서 회동한 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일체가 돼 가기로 했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회동 중 김종인은 전화를 걸어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윤석열이 김종인과 이준석에게 완패했다는 말도 나왔지만, 6일 출범한 선대위는 윤석열의 당초 구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반전이 일어났을까. 측근들은 ‘뚝심’이라고 말한다. 많이 듣고 고심하지만 일단 마음을 정하면 꿈쩍도 안 한다. 끝까지 설득하고 기다린다. 큰 원칙만 지키면 나머지는 양보한다. 김종인이 상왕 노릇을 하면 누가 윤석열을 지지하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윤석열은 ‘김 위원장은 시대정신을 읽어 국민이 요구하는 어젠다와 해법을 제시할 것’이라며 밀어붙였다. 자기 정치만 한다는 이준석에 대해서는 ‘돌아올 시점과 지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며 홍보의 전권을 넘겼다. 반문재인 세력의 대통합과 혁신을 통한 당의 통합이란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대위 출범 후 조국사태를 비판하며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 호남의 무소속 이용호 의원 등이 합류하며 외연 확대가 시작됐다. 윤희숙 전 의원과 홍준표·유승민 캠프 인사들이 동참하며 내부 통합도 탄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남은 길이 더 험난하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존재론적 갈등 관계에 있다. 국민의힘에 윤석열은 새로운 희망인 동시에 ‘굴러온 돌’이다. 선두권 지지율이 전부였던 윤석열에게 국민의힘은 포기할 수 없는 정치 자산인 동시에 개혁의 대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준석 당 대표 체제의 등장이 자신의 정치적 퇴출로 이어질 것을 아는 기성 정치인들의 태업 가능성은 상존한다. 킹의 배신을 두 차례 경험한 킹 메이커 김종인은 본선 레이스에서 각종 안전장치를 강구할 것이다. 이준석은 본선을 차차기 대선 준비 무대로 활용할 수 있다. 여당 측에서 이재명만 부각되고 민주당이 사라지고 있다면 국민의힘에서는 윤석열이 밀려나고 선대위가 부각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한 듯 윤석열은 선대위 출범 당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지도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끌고 가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정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이견의 존재는 발전의 원동력이자 새로운 창조의 자양분이고, 이견을 잘 조정하는 것이 정치가의 일이다.”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극대화된 제왕적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의 폐해를 극복하고, 진영 논리와 정치적 이해를 위한 국민 편 가르기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정치 초보 윤석열 단독 플레이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대선에서 김종인이나 이준석, 국민의힘이나 선대위가 아니라 윤석열을 선택한다. 특히 민주당이 국회와 지방권력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정자 대통령이 되려면 제왕적 대통령보다 뛰어난 리더십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대선을 86일 남겨둔 현재까지 윤석열의 비전은 여전히 빈약하다. 정치입문 명분이었던 공정과 상식은 퇴색하고 있고 국정 운영 철학이나 청사진은 오리무중이다. 조정자로서의 리더십을 보여주기엔 남은 대선 기간이 너무 짧다.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을 선택한 사람 중 대다수는 윤석열보다 정권교체를 지지한다. 선택을 유보한 사람들은 ‘차악을 선택하는 대선’이라고 말한다. 국민은 왜 윤석열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윤석열뿐이고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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