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출 수 없는 연금개혁, 새 정부가 가야 할 길
[유종성 가천대학교 정책학 교수]
리어카에 폐지를 잔뜩 싣고 언덕길을 끙끙대며 올라가는 허리가 굽은 어르신을 보았다. 자칫 리어카의 무게를 못견디고 쓰러질까 염려되어 잠깐 붙잡아드리니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신다. 이게 선진국의 모습인가? 과거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오늘의 노인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 속에 살아야 하는가?
우리나라의 노인은 크게 세 계급으로 구성된다(아래 표 참조). 특수직역연금 수급자, 국민연금 수급자, 기초연금밖에 못 받거나 기초연금조차도 못받는 노인들이다. 건보공단의 소득재산 자료를 보니 2018년 서울에 거주하는 62세 이상자들 중에서 4.6%가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 연평균 3,295만 원(월평균 271만 원)의 특수직역연금을 받고 있었다. 36.6%가 연평균 499만 원(월평균 41만6000원)의 국민연금을 받고 있었다. 59.1%의 노인은 국민연금도 특수직역연금도 못 받았는데, 이들은 시장소득도 국민연금이나 특수직역연금 수급자들보다 훨씬 더 낮았다.
국민연금 수급자의 53.2%와 특수직역연금 수급자의 40.9%가 평균 3,400만 원 이상의 시장소득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연금도 특수직역연금도 못받는 이들 가운데서는 23.6%만이 평균 2,739만 원의 시장소득을 올렸다. 즉, 이들 중 76.4%, 또는 전체 노인의 45.2%(59.1% x 76.4%)는 시장소득이 0이어서 기초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 급여에만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다. 시장소득과 공적연금(기초연금 제외) 수령액을 합한 총소득의 평균은 특수직역연금 수급자는 4,749만 원, 국민연금 수급자는 2,346만 원, 비수급자는 646만 원(월 53만8000원)으로 세 계급 간에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난다(유종성 외, 2021). 결국 공적연금이 노인의 시장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는커녕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은 장기적으로 재정적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후세대에 막대한 부담을 안기게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왜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가? 시간이 지나 국민연금이 보다 성숙하면 이런 문제가 해소될 것인가? 제도 성숙에 따라 앞으로 국민연금 수급률과 평균 수급액이 조금은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젊은 세대 가운데도 공적연금 미가입자가 4분의 1에 달하며, 저소득층일수록 미가입자가 많고 가입기간이 짧다. 국세청의 소득세 마이크로 데이터에 나타난 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보험료 공제 현황을 보니 19세-59세 인구 중 2019년 소득의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거나 근로소득 연말정산을 한 자들('통합소득자'로 칭하기로 함; 약 2,077만 명) 중 74.3%가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있었고, 7.8%가 특수직역연금에 가입하고 있었다. 이들의 공적연금 가입률은 19세-59세 인구 중 소득활동을 하지 않았거나 일용근로소득자와 인적용역사업자 중 종합소득신고를 하지 않은 이들(약 1000만 명)에 비해 훨씬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 통합소득자들을 10분위로 나누어보면 1분위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12.1%, 특수직역연금 가입률은 0%로 나오며, 최근 4년간 국민연금 가입년수는 평균 0.87년에 불과하다. 결국 오늘의 젊은이들 가운데서도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나 비경제활동인구의 다수가 노후에도 빈곤에 빠질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많은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들이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하거나, 가입기간을 10년도 못 채우거나, 가입기간이 겨우 10여년에 불과하여 용돈연금밖에 못 받게 되며, 기초연금 수준이 너무 낮은 데 있다. 국민연금은 소위 A값이 소득재분배 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었으나 A값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 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급여산식(2028년 이후 적용될)은
1.2*.05n*(A+B)=0.06nA+0.06nB(n은 10 이상 40 이하)이다.
오른쪽 부분(0.06nB)은 개별 가입자의 생애소득(B)과 가입기간(n)에 비례하며, '균등급여'라고 불리는 왼쪽 부분(0.06nA)은 개별 가입자의 소득에 관계 없이 가입자 전체의 평균소득에 기초하여 소득재분배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 '균등급여'가 가입기간(n)에 비례하는데, 저소득층일수록 가입기간이 짧아서 A값의 혜택을 못 받거나 덜 받게 된다는 점이다. 즉, 균등급여가 ‘불균등급여’로 되는 것이다. 따라서 40년 가입기간을 채우면 평균소득자의 소득대체율은 40%, 평균소득 2분의 1 소득자의 소득대체율은 60%, 평균소득 4분의 1 소득자의 소득대체율은 100%가 되도록 설계했는데, 이처럼 가장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저소득자들이 미가입 또는 짧은 가입기간으로 혜택을 못 받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 급여가 고소득자보다 저소득자에게 불리한 역진적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국민연금연구원의 연구로도 확인된다(최기홍 신승희, 2014).
국민연금의 문제는 사각지대와 역진성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장차 연금재정이 고갈되고 연금재정의 안정성이 위협받는다. 개혁을 하지 않고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후세대에게 막중한 부담을 안기게 된다. 현재 9%인 국민연금 보험료가 2060년에는 29.3%가 되어야 연금제도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2070년에는 34.7%가 되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먼저 '작동하지 않는 균등급여'를 '진정한 균등급여'로 만드는 것이다. 즉, 국민연금 가입여부나 가입기간에 관계 없이 모든 노인에게 0.06*40*A=12*0.2*A의 균등급여를 지급하여 20% 평균소득 대체율을 보장하는 것이다. 현재 기초연금(월 30만 원) 기준연금액이 A값(약 254만 원)의 약 12%인 30만 원인데, 이를 모든 노인에게 A값의 20%인 월 50만 원 수준으로 올려 지급하는 것이다. 물론 부부감액도 폐지한다. 그리고, 국민연금은 소득재분배 기능을 빼 내어 순수하게 소득과 기여에 비례하는 수익비 1의 연금으로 만들어 재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즉, 보편적 기초연금 (또는 노인 기본소득)과 소득 및 기여비례 국민연금의 이층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혁은 노인빈곤을 획기적으로 완화할뿐만 아니라 후세대에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 국민연금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국민연금이 낮은 기여율에다가 소득 상한액(현재 월 524만 원)을 낮게 설정하여 중산층 근로소득자들의 노후소득 보장에도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소득과 기여에 비례하는 연금으로 개편하면 기여율과 소득대체율을 동시에 올리는 개혁에 대한 합의를 이루기가 용이해질 것이다. 그리고 소득상한액을 훨씬 높여 소득상한액 이상의 중상위 소득자들(2017년 현재 사업장 가입자의 18%)에게도 노후 소득보장에 국민연금이 실질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여 특수직역연금 수령자들과의 격차를 줄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 연금재정의 장기적 안정을 위해 스웨덴 식의 명목확정기여형(Notional Defined Contribution; NDC) 연금 방식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NDC 연금에서 급여액은 축적된 기여자산(기여금에 이자를 더한 금액)을 은퇴시의 기대여명으로 나눈 값을 기준으로 정해지니 재정적 지속가능성과 세대간 형평성이 확보됨은 물론, 은퇴 연령을 법으로 정하지 않고도 은퇴를 늦출 유인이 제공된다. 은퇴시기를 늦출수록 기여자산이 늘어가는 한편 기대여명은 줄어들게 되니 이중으로 연금급여액이 늘게 되어 은퇴를 늦출 유인이 강해진다.
더 나아가서 소득중심 고용보험 논의의 문제의식을 수용하여 국민연금도 사업장과 지역가입자를 구분하지 말고 모든 소득활동자(근로소득자와 사업소득자)를 포괄하여 사각지대를 완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세청이 모든 노동소득(근로소득과 사업소득)에 국민연금보험료를 원천징수함으로써 가능하다. 실시간 소득파악 없이도 가능하다. 2019년도 소득의 경우 국세청은 종합소득 신고나 근로소득 연말정산을 하지 않은 일용근로소득자와 특고, 프리랜서 등 인적용역사업소득자를 포함해 2,970만 명으로부터 소득세를 징수하였다. 국세청이 소득세 원천징수와 동시에 사회보험료 원천징수를 하면 2,970만 명의 소득활동자가 곧바로 국민연금에 포괄되며, 사각지대는 완전히 사라진다. 특수직역연금 가입자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보험료를 징수하면 된다.
이처럼 국민연금이 모든 취업자를 포괄해도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들은 소득과 기여에 비례하는 연금만으로는 충분한 노후소득보장이 안 된다. 따라서, 모든 노인에 대한 균등급여로서의 보편적 기초연금(또는 노인 기본소득), 또는 스웨덴과 같은 기초보장연금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끝으로 이러한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기 전의 과도기, 또는 개혁의 이행기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와 같이 기초연금이 67%의 노인들에게만 지급되고, 부부감액으로 황혼이혼을 부추기는 상황은 빨리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모든 노인에게 동일 금액의 기초연금, 또는 노인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안은 아니다. 현재 자신의 기여에 비해 월등히 높은 급여를 받는 특수직역연금 수급자들과 A값 혜택을 상당히 받고 있는 국민연금 수급자들에게는 이중의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서 제시한 바와 같은 개혁이 완전히 이루어지기 전에는 절충적인 방안의 기초보장연금이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우선 부부감액은 당장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자산심사도 폐지하고, 기초보장연금 금액은 국민연금이나 특수직역연금에만 연계하여 완만하게 감액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가령 국민/직역연금을 월 50만 원 이상 수급할 경우 50만 원 초과액의 20% 또는 25%를 감액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30만 원을 기준연금액으로 할 때 20% 감액률을 적용하면 국민/직역연금 50만 원에서 200만 원 이하까지는 슬라이딩 스케일로 감액지급을 받게 되어 노인의 95% 이상이 급여를 받게 될 것이다. 또한, 75세 이상 고령자의 기준연금액을 우선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월 40만 원을 기준연금액으로 하고 국민/직역연금에서 월 50만 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20% 감액률을 적용하면 250만 원 이하까지 감액지급을 받게 되어 98% 이상의 고령자가 기초보충연금을 받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연금개혁의 과제를 회피하였다. 차기 정부는 더 이상 연금개혁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OECD 최고의 노인빈곤률 문제를 외면해서 안 되고,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 문제도 더는 회피해선 안 된다. 노인 빈곤의 해소와 노후 적정 소득보장을 위한 공적연금의 기능을 제고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연금재정을 파탄에 빠뜨리거나 후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는 연금개혁을 이루어내야 한다. 아직 여당과 제1야당의 대선 후보들이 연금개혁에 관한 공약을 발표하지 않았으나, 제3지대의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연금개혁을 의제화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여당 및 제1야당 후보들과 제3지대 후보들 간에 연금개혁의 방향에 대한 책임있는 토론이 이루어지고, 차기 정부에서는 제대로 된 연금개혁이 꼭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이 글은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의 연금개혁 이슈특집에 실었던 글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참고문헌:
유종성, 김민혜, 김승연, 유수진(2021). "소득분배 연구를 위한 건보공단 빅데이터의 의의와 한계: 서울시 사례연구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정책 28(3), 75~105.
최기홍, 신승희(2014). "국민연금 이력자료에 의한 계층별 특성치의 통계적 추정." 국민연금연구원 연구보고서 2014-03.
[유종성 가천대학교 정책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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