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글래스고 기후변화 총회가 남긴 숙제

김효은 외교부 기후변화대사 2021. 12.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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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3일 세계 약 200개국은 영국 글래스고에서 막을 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석탄발전 단계적 감축 등을 포함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대책인 '글래스고 기후 조약'에 합의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지난 10월 3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는 의미 있는 합의들을 도출하고 지난달 13일 막을 내렸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120개국 정상들이 참석할 만큼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회의였다. 거창한 회의치고는 그 결과가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지적도 있지만 2주간의 치열한 협상에 참여했던 대표들은 최종 합의문이 목표와 현실을 지혜롭게 고려한 균형 잡힌 문서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합의 채택 직전 뜻밖의 위기에 몰리자 단상에서 순간적으로 울컥하며 눈물을 보인 알록 샤마 COP26 의장에게 각국 대표들이 우렁찬 박수를 보내며 지지를 보낸 것도 글래스고 합의가 금세기 말까지 지구평균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한다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류의 공동된 노력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기여임은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글래스고 합의는 모든 당사국들에게 적지 않은 숙제를 남겼다. 첫째는 여전히 부족한 온실가스 감축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여 나가는 일이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상당수 국가들이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하고 온실가스 감축목표도 상향했지만 여전히 1.5도 목표 달성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당사국들은 자국 온실가스감축계획(NDC)이 과연 1.5도 목표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목표를 상향하여 내년까지 제출토록 요청받았다. 미흡한 수준의 목표를 제출한 국가들을 독려하기 위해 내년부터는 매년 장관급 회의도 개최할 예정이다. 올 연말에 제출될 2030년까지 40% 감축이라는 한국의 NDC는, IPCC의 권고를 기반으로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연계하여 1.5도 목표에 기여하는 계획으로 설계돼 있다.

둘째는 설정한 목표에 대한 꼼꼼하고 정기적인 점검이다. 파리협정은 각국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결정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했지만 글래스고 합의는 일단 결정해서 제출한 목표에 대해서는 투명하고 상세한 보고를 통해 이행 상황을 제대로 검증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2023년 범세계적 점검과 2024년 이행경과 보고서 제출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부터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매년 우리 NDC 이행 상황을 점검해 나가야 추후 국제사회의 검증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셋째는 이번에 합의된 파리협정 제6조(시장메커니즘)에 대한 세부 이행지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효과적인 활용계획을 수립하는 일이다. 6조 체제는 당사국들에게 국내에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최대한 진행하되, 해외에서의 감축 사업을 통해 획득한 탄소 크레딧을 국내로 이전하여 자국 NDC 이행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합의된 지침은 동일한 감축 실적이 복수 국가에서 이중계산되지 않도록 엄격한 조정방식을 도입했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적극적으로 온실감축 사업을 진행할 수는 있지만, 이를 통해 획득한 실적을 한국 NDC 달성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업 유치국이 실적의 전체 또는 일부를 자국 실적에 포함시키지 않고 한국 실적으로 이전하는 데 합의해 줘야 한다. 유념할 것은 일부 선진국만 의무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했던 교토 체제와 달리, 파리 기후체제는 모든 국가들에게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개도국들이 자국에서 발생한 감축 실적에 대해, 선뜻 해외 이전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외교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기에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 스위스 등도 개발도상국들과 기후변화협력협정을 체결하며 포괄적인 협력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환경운동가와 시민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지난 10일(현지시간) 열린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끝으로 글래스고 회의는 역대 기후변화회의 중 미래세대의 목소리가 가장 컸던 회의로 기억될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 뿐만 아니라 수백명의 청소년 대표들이 회의장 안팎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의 기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구에 내일은 없기에, 청소년은 더 이상 내일의 주역이 아니라 오늘 벌어지는 기후 논의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큰 호응을 얻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청년기후서밋의 정례 개최 구상이 각국으로부터 큰 지지를 얻고, 글래스고 최종 합의문에 기후변화 총회 계기에 청년기후포럼을 연례 개최하자는 문구로 포함된 데에는 더 이상 청소년들을 기후 논의의 조연으로 둘 수 없다는 데 국제사회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글래스고 총회는 끝났지만, 글래스고 기후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행보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탄소중립 선언과 야심찬 2030년 NDC 발표 등을 통해 그동안 한국이 국제사회에 보여준 기후 리더십은 착실한 이행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제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 청소년, 모든 국민이 힘을 합쳐 약속 이행에 매진할 때이다. 국제사회도 2020년대를 '행동의 십년(decade of action)'으로 칭하고 있다.

김효은 외교부 기후변화대사

※필자소개
김효은 외교부 기후변화대사는 기후변화와 환경, 국제기구 등 다자협력 분야 전문가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26회 외무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해 외교부 세계무역기구과장, 기후변화환경과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참사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주 세네갈 대사, 2018년부터 올해까지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사무차장을 지냈다.

[김효은 외교부 기후변화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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