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이별 살인’

김광일 논설위원 2021. 12. 1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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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속담에 ‘너를 사랑한 사람이 너를 울릴 것이다’는 말이 있다. 요즘은 그 정도가 아니다. ‘너를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면서 상대 여성과 가족을 상대로 끔찍한 일을 벌이는 일이 빈번하다. 툭하면 불을 지르고 칼을 꺼내든다. 대개 이별 통보를 받은 끝에 벌이는 짓이 많다. 엊그제 서울 송파구에서 스물여섯 먹은 남성이 헤어진 여자친구 집을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여성의 어머니가 숨졌고 열세 살 남동생은 중태에 빠졌다.

▶사건이 잦고 유형이 비슷해 경각심이 무뎌질까 걱정이다. 지난달에는 서울 중구에 있는 한 오피스텔에서 서른다섯 남성이 전 여친을 살해했다. 희생자는 경찰에 신변보호 등록도 했고, 스마트워치 등으로 여섯 차례나 신고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이틀 전에는 30대 남성이 헤어지자는 여성을 흉기로 찌르고 19층 아파트 밖으로 던져 죽게 했다.

▶’데이트 폭력, 이별 범죄’ 같은 핵심 단어로 사례를 찾다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너무 많다. 경찰청은 국회 행안위 자료에서 “지난 5년간 데이트 폭력 신고가 8만 건 이상”이라고 했다. 그중 살인으로만 227건을 검거했다고 했다. 이수정 범죄심리학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파트너 폭력으로 1년에 100명 정도씩 죽어 나갔다”고 했다. 언론 기사만 일일이 세어봐도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여성이 가해자일 때도 있다. 어떤 학자는 “데이트 폭력의 피해는 성차(性差)가 거의 없다”는 통계를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강도 높은 폭력의 피해자는 여성이 압도적이다. 결별을 알려오자 문자 폭탄을 2만 건이나 보내고, 새 남자친구를 인질로 잡기도 한다. 배달앱 센터에 전화를 걸어 “어떤 전화번호로 음식 주문을 했는데 배달이 안 됐다. 주소 확인을 해달라”며 전 여친의 바뀐 주소를 알아낸다. 주거 침입과 폭행이 뒤따른다. 헤어진 여성 버스기사를 휘발유로 불을 질러 죽인 사건도 있었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칫 ‘3각 관계 갈등’ 혹은 강제 키스, 또는 여성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끄는 행위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요즘은 흉악 범죄 중에서도 가장 참혹한 형태로 나타난다. 여성 쪽 부모 형제도 무참히 당하곤 한다. 딸에게 “차라리 헤어지기 쉬운 남자를 사귀라”고 했다던 어떤 작가의 말에 기가 막힐 뿐이다. 나중에 가해자의 음주 측정을 하지 않기에 술에 취해 욱해서 그랬다는 식으로 빠져나가려 든다. ‘사랑해서’라는 핑계까지 내세우는 건 정말 역겨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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