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일몰의 서해
[경향신문]
우리에게 서해는 일몰(日沒)의 바다다. 붉은 낙조와 밤의 고요, 끝없는 갯벌의 바다다. 하여, 한 해가 저물 때면 동해보다 서해가 먼저 떠오른다. 정태춘은 서해의 속살을 가장 잘 아는 가수다.
‘서해 먼 바다 위론 노을이 비단결처럼 고운데/ 나 떠나가는 배의 물결은 멀리멀리 퍼져간다/ 꿈을 꾸는 저녁 바다에 갈매기 날아가고/ 섬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물결 따라 멀어져 간다. -‘서해에서’ 일부
1978년 군에서 제대한 정태춘은 음악평론가 최경식의 소개로 서라벌레코드사에서 데뷔앨범 <시인의 마을>을 내놓는다. ‘촛불’ ‘사랑하고 싶소’ 등이 히트하면서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재수를 때려치우고 낭인처럼 전국을 떠돌 때나 인천 부근 해안가에서 군 복무할 때 쓴 곡이었다.
경기 평택의 끝인 갯마을 도두리가 고향인 정태춘에게 서해는 바다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고래를 잡으러 떠나던 송창식의 바다도, 영일만 친구가 있는 최백호의 바다도 아니었다. 그에게 서해는 간척지를 밑천 삼아 농사를 짓던 고향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삶의 터전이었다. 세상의 부조리함과 맞서 싸워온 그가 2006년 평택 미군기지 확장예정지로 편입된 고향을 사수하는 투쟁을 벌인 건 필연이었다. 어쩌면 그건 서해의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서해에서’와 맥을 같이하는 또 하나의 노래가 ‘겨울 바다’다.
‘겨울 바다 나가봤지 잿빛 날개 해를 가린/ 갈길 잃은 물새 몇이 내 손등 위에 앉더군/ 길고 긴 갯벌 위엔 흩어진 발자국만/ 검푸른 겨울 바다 하얀 해가 울더니/ 노란 달이 어느 창에 내 눈길로 나를 보네.’
‘사랑과 평화’가 발표했던 노래지만 이런 겨울엔 김현식의 리메이크 버전이 더 어울린다. 여하튼 한 해의 끝자락에 서해가 거기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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