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미·중관계사] 중국 공산당의 대미 인식의 적대적 전환

2021. 12. 12.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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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은 올해로 창당 100주년을 맞이했다.

이런 중국 공산당사의 기념비적인 해에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던 1921년 7월 1일만 해도 중국은 미국에 적대적이지 않았다.

비록 소련 공산당의 코민테른(공산주의 제3인터내셔널)의 지지와 지도를 받으며 창당했지만 중국 공산당은 애초부터 미국에 적대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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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은 올해로 창당 100주년을 맞이했다. 이런 중국 공산당사의 기념비적인 해에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양국 간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면서 진영으로 나눠지지 않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미국은 지난 6일 신장 인권문제로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화했다. 미국 선수단에 외교 사절단을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에 중국 측은 “반드시 반격하는 조치를 결연하게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중 간의 적대시 정책이 당분간 이어질 양상이다.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던 1921년 7월 1일만 해도 중국은 미국에 적대적이지 않았다. 창당 멤버 중 한 명이었던 마오쩌둥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오는 오히려 미국의 독립전쟁에서 미국인의 ‘혁명’정신을 지지했다. 1917년의 볼셰비키 혁명과 함께 미국의 혁명 또한 마오에게 적지 않은 영감을 주었다. 혁명 로맨티시즘에 빠진 마오는 상하이에서 개최된 제1차 공산당 당대회에 참석하면서 창당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린다.
1921년 중국 공산당 1차 당대회 건물. 출처:위키피디아
비록 소련 공산당의 코민테른(공산주의 제3인터내셔널)의 지지와 지도를 받으며 창당했지만 중국 공산당은 애초부터 미국에 적대적이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에 있어서 초기 외세의 척결대상은 ‘제국주의’ 나라들이었다. 광범위한 개념이었지만 미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영국과 일본 등이 주된 대상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이런 척결대상의 반열에 오른 것은 1927년 이후의 일이다.

미국이 장제스 정권의 난징 정부를 우선 인정하면서부터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장제스의 난징 정부가 합법적인 정부였다. 이에 미국은 당시 중국의 통일 과업의 주체 세력도 난징 정부로 판단했다. 그리고 난징 정부에 대한 지원과 지지를 개진했다. 중국 공산당은 자연스럽게 미국이 난징 정부와 중국의 분열을 공모하는 세력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런 중국 공산당의 인식이 오늘날까지 유효하게 이어져 왔다. 중국은 미국이 신장 인권과 대만 문제에 개입하는 행위를 또다시 중국의 분열을 조장하는 시도로 인지하고 있다. 미·중의 인식 차이는 100년이 되도록 해결의 접점을 찾지 못하며 난항 중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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