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흥망성쇠 가르는 '소재 기술' [찌릿찌릿(知it智it) 전기 교실]

손성호 | 한국전기연구원 선임연구원 2021. 12. 12.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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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달 꽤 오랜만에 경북 경주를 방문했다. 경주는 약 1000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고,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유적지구를 품고 있지만, 전에는 바쁜 업무차 갔다 돌아오곤 하는 곳이었다. 경주가 품은 긴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내 국립경주박물관에 들렀다.

역사관은 신라의 건국과 성장, 번영을 주제로 총 3개실에서 전시 중이었는데, 첫 번째 전시실을 거닐다가 ‘신소재 철을 마음대로 부리다’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에 서술된 글을 읽어보니 신라가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철’이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신라의 시조로 알려진 박혁거세가 지금의 경주 지역인 당시 서라벌에 세운 ‘사로국’은 한반도 중남부에 존재했던 삼한(마한, 진한, 변한) 중에서 진한의 12개 소국 가운데 하나였다. 사로국은 서기 3세기 중엽을 시작으로 4세기쯤 해당 지역 일대를 통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는 철기시대 초기에 해당한다. 철을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었다는 건 당시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했다는 뜻이다. 이 점이 다른 세력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동력이 됐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주장을 뒷받침하듯 1~4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의 유적에서 쇳물을 거푸집에 붓는 ‘주조’나 쇳덩이를 불에 달군 뒤 두들겨 원하는 기구를 만드는 ‘단조’의 증거들이 나왔다. 이는 사로국이 당시 최첨단 재료였던 철을 상당한 수준으로 가공·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새로운 소재의 활용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와 궤를 함께해왔다.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 적용 또는 사용되는 각종 합금이나 탄소섬유 등은 이러한 소재 기술 발전의 결과물이며,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주요 핵심 산업들도 소재에 의존하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 현재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뿐만 아니라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성장 중인 이차전지도 마찬가지다.

이차전지는 양극재와 음극재, 분리막, 그리고 전해질로 이뤄진 비교적 간단한 구성이지만, 주요 소재가 바뀌면서 발전을 거듭해왔다. 특히 니켈계 배터리에 이어 20세기 말 리튬이온 배터리가 개발되면서 용량과 성능이 향상됐고, 사용처 또한 확장됐다. 앞으로도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이차전지가 개발되면 지금보다 많은 분야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소재 기술의 개발은 제조업 경쟁력 향상의 핵심 요소이다. 우리는 이미 2년 전 일본의 수출규제로 발생한 어려움을 통해 소재의 중요성을 잘 알게 됐다. 이에 한국전기연구원 등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는 국내 핵심 산업인 전기·전자·기계 등의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일 차세대 소재를 개발하고, 성능과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안보적인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일이다.

이와 더불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주요 금속광 등의 확보를 위해서는 합작투자와 같은 전략적 제휴와 협력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해 특정 국가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안정적인 원료 수급은 산업 경쟁력의 거름인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추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 만큼 향후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할 것이다.

손성호 | 한국전기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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