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보호 가족 살해 사건..'골든타임 4일' 놓친 경찰

유선희 기자 2021. 12. 12.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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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교제했던 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이모씨가 12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범행 5일 전 감금·성범죄
피해자 ‘신변보호’ 요청
천안·대구·서울 4곳서 개입
긴급 체포 않고 귀가 조치
살인·살인 미수 혐의 구속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 A씨의 가족을 살해한 이모씨(26)가 범행 닷새 전 A씨를 감금하고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나흘 동안 전국 경찰서 4곳에서 개입했지만 끝내 참극을 막지는 못했다.

12일 경향신문 취재에 따르면 이씨는 한때 교제하던 A씨와 마주하게 된 지난 5일 충남 천안의 집에 A씨를 감금하고 성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다음날인 6일 A씨를 차에 태우고 본가가 있던 대구로 향했다.

A씨는 대구에서 PC 게임 메신저를 통해 친구에게 “감금당하고 맞았다. 전화기로 연락이 불가능해 메시지를 보낸다”면서 부모님 연락처를 전달했다. 친구의 연락을 받은 A씨의 아버지는 같은 날 오후 8시40분 해당 사실을 서울 강남경찰서에 알렸다. 경찰은 이씨 주거지의 관할인 충남 천안서북경찰서와의 공조로 신고 접수 20분 뒤인 오후 9시쯤 대구에서 이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현장에 출동한 대구 수성경찰서는 이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지만, 긴급체포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해 귀가 조치했다. 이씨는 조사에서 “A씨와 만나는 사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신변보호 조치를 요청했고, 사건이 이첩된 천안서북서에서는 7일 신변보호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A씨는 실거주지를 관할하는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신변보호 대상에게 지급되는 스마트워치를 받았다.

이처럼 전국에 있는 경찰서 4곳이 신변보호 전후 상황에 대처했음에도 신변보호의 직접 대상이 아닌 가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방지하지는 못했다. 스토킹·감금 등의 피해자인 A씨가 보호 대상이 되긴 했지만, 가해자인 이씨의 활동은 ‘통제권’ 바깥에 놓이면서 범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씨는 지난 10일 오후 2시26분쯤 A씨 주거지인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빌라를 찾았다. 빌라 주민들의 출입을 엿보며 공동출입문 비밀번호를 알아낸 이씨는 A씨의 집 문 앞까지 들이닥쳤고, 당시 집에 있던 A씨의 어머니와 초등학생 동생을 흉기로 찌른 뒤 옆 건물 빈집으로 달아났다. 숨어 있던 이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현장에서 체포됐다. A씨가 신변보호 대상자가 된 지 불과 사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 범행으로 어머니가 숨졌고 동생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애초 가족이 목적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씨가 미리 흉기를 소지하고 집을 방문한 것, 공동출입문 비밀번호를 알아낸 점 등을 근거로 계획범죄에 무게를 싣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은 이씨의 휴대전화 포렌식 작업을 통해 A씨에 대한 스토킹이 있었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날 구속됐다. 서울동부지법은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이씨에 대해 영장을 발부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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