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장릉아파트와 사라진 정부 역할

2021. 12. 1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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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세계문화유산인 김포 장릉(章陵)의 경관을 훼손하는 아파트 건설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골조공사가 마무리되고 내부공사가 진행 중인 아파트에 문화재청이 지난 9월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이에 반발, 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여 지난 10일 법원으로부터 가처분인용을 받았다. 건설사들은 공사를 재개할 명분을 얻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내년 6월 입주예정자를 볼모로 한 건설사들과 문화재청의 싸움은 이제부터 본격 시작이라는 평가다. 문제는 모두들 법원의 판단만 지켜볼 뿐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장릉의 아파트는 말이 김포이지 사실은 인천 검단신도시의 택지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여의도의 4배 면적에 달하는 11.1㎢(336만평)에 주택 7만5000여 세대가 건설되는 2기 신도시 건설지역이다. 먼저, 국토교통부가 장릉 인접 구역까지 신도시 지역으로 지정한 것부터 잘못이다. 애초 역사 및 문화 경관을 보존하기 위한 주변경관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것이다. '닥치고 아파트 공급'이라는 논리 앞에 중요한 고려사항이 무시된 셈이다. 그래서 수도권 아파트값 급등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3기 신도시 창릉신도시와 태릉지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두 번째 책임은 문화재청에 있다. 문화재청은 아파트가 한창 건설되던 지난 2년여 기간 동안 아무런 말이 없다가 최근에야 이를 문제 삼아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문화재청은 2017년 만들어진 규정에 따라 장릉 반경 500m 안의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7층 높이인 20m 이상 건축물을 지으려면 개별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해당 건설사들은 심의없이 왕릉에서 450여m 지점에 70m 높이의 아파트 골조공사를 마쳤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말대로 반경 500m 지점을 기계적으로 나눠서 그 안쪽 지역의 아파트를 부분 철거하더라도, 500m 밖 다른 아파트들로 인해서 장릉에서의 계양산 조망경관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문화재청의 반발은 어쩌면 책임회피를 위한 형식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아파트 부지를 매각한 인천도시공사, 건설 사업을 승인한 인천 서구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토지 매입시점인 2014년 이미 건축허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유네스코 등재 문화재의 경관 훼손에 대한 아무런 고민이 없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조선시대 왕릉 42기는 경복궁을 중심으로 10리(4km) 밖에서 100리(40km) 안에 조영되어 있다. 과거에는 왕릉 주변에 군사시설과 대학 등이 들어서면서 경관을 해쳤으나 최근에는 고층 아파트 건설로 인한 경관 훼손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조선왕릉 전문가인 이창환 상지영서대학 교수는 2010년 논문에서 "장릉은 능침 전망 경관의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조산(朝山)인 계양산의 시계 확보가 필요하다"면서 "능역 남측의 (2002년 완공된) 삼성아파트 등 건축물이 왕릉의 스카이라인 확보에 저해되기에 점차적으로 이전 및 철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존 아파트를 철거하기는커녕 오히려 스카이라인을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아파트들이 신축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17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장릉 문화재 인근 아파트 철거' 요구에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세계문화유산 가치 유지와 합리적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훼손된 스카이라인의 복구는 문화재청에서 조율할 수 있는 사안을 넘어섰다. 문제가 되는 아파트의 일부 구간을 철거하고 구조를 변경하게 되면 건설사로서는 수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 내년 6월 입주를 앞둔 3400가구의 1만여명에게도 큰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헌법 제35조는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 환경보존을 교육, 납세, 근로, 국방의 의무와 함께 국민의 5대 의무로 격상시켰다. 여기에서 환경은 자연환경은 물론 사회환경과 문화재 등을 포함하게 된다. 그렇기에 장릉 인근 아파트 논란은 결국 대통령이 준수하고 수호해야할 헌법상 환경보존 의무와 맞닿아있다.

이제라도 청와대 및 2기 신도시를 관장하는 국토부는 장릉 아파트 논란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컨트롤타워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순간, 모두들 법원 판단을 기다린다며 책임 회피하기에 급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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