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전 칼럼] 혼자 극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

한겨레 2021. 12. 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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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전 칼럼]지금 금호의 곁에 스물다섯의 금호가 있다면 그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까짓거, 농성해! 스무살의 금호라면 마이크도 없이 광장에 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것이다. 사람 목숨 갖고 장난쳐? 나는 쫄보라서 소리를 지르진 못하고 조용히 전단지를 돌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나는 어떻게든 그를 지키고 싶고 그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홍은전 |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82년생 노금호는 어렸을 때 근이영양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제가 없는 그 희귀질환을 그 시절엔 루게릭병이라고 불렀다. 신앙의 힘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일곱살에 기도원에 들어가 5년간 지냈다. (집으로 돌아온 뒤) 근육이 퇴화하는 걸 막기 위해 매일 산을 오르내렸지만 점점 걷는 게 힘들어졌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아버지가 금호를 업고 4층 교실까지 오르내렸다. 교실을 아래층으로 옮겨달라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금호는 소외감을 느꼈고 자신은 괄호 바깥의 존재 같다고 생각했다. 열일곱살엔 죽으려고 수면제를 잔뜩 먹었고 다음날 깨어났다. 그때부터 죽자 사자 공부했다. 그것만이 살길이었다.

2001년 금호는 대구대학교에 입학했다. 어느 날 기숙사 복도를 지나다가 어떤 중증장애를 가진 학생의 방을 보았다. 소변 통이 주욱 쌓여 있는 모습이 몹시 지저분했다. 무슨 일이냐고 금호가 묻자 비장애인 룸메이트가 도망을 갔다고 했다. 학교는 장애학생에게 필요한 지원을 전혀 하지 않았다. 비장애학생과 장애학생을 짝지어 배정하고 비장애학생에게 봉사 점수를 줄 뿐이었다. 혼자 남은 그는 하루 종일 굶다가 저녁이 되면 친구가 와서 배달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그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던 금호는 동료와 함께 전단지를 만들어 점심시간에 학교 광장에 나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나중엔 동아리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장애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활동을 펼쳤다.

2006년 대학을 졸업한 금호는 동료들과 함께 대구에서 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조직해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는 농성을 벌였다. 평생 집안에 갇혀 살던 이들이 자신의 울분을 토하면서 아우성쳤고 그 힘들이 모여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를 이루어냈다. 금호와 그 친구들이 활동을 시작한 2006년 이후 10년 동안 대구시 장애인 예산은 6배가 늘었다. 대구시립 희망원에서 수백명의 장애인들이 소리 없이 죽어갔을 때 줄기차게 싸우며 시설을 폐쇄시키고 갇힌 사람들을 탈시설 시켜온 것도 이들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금호와 그 친구들을 동경했다. 보수적인 땅에 깃발을 꽂고 더 낮고 더 급진적인 운동을 개척해온 그들에겐 단단한 자부심과 동지애가 흘렀다.

당신에게 장애운동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금호는 이렇게 말했다. “장애운동은 나 혼자 장애를 극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을 주었어요.” 아… 나는 작게 탄식했다. 그가 덤덤하게 말했던 십대 시절의 금호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장애를 치료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부모와 떨어져 살기를 택한 일곱살의 금호는,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가 자신에게도 찾아와주길 바라며 기도하던 초등학생 금호는, 점점 더 걷는 게 힘들어지는데도 기를 쓰고 산을 오르내렸던 중학생 금호는, 매일 아버지 등에 업혀 4층까지 오르내리고 종일 화장실 가는 걸 참아야 했던 고등학생 금호는, 죽으려고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든 금호는, 혼자 싸우느라 너무 힘들었구나, 너무 외로웠구나… 코가 시큰거렸다.

안타깝게도 최근 그의 장애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검사 결과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약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30억이란다. 다행히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되면 첫해에 5천만원, 연간 1천만원씩 들지만 불행히도 ‘지원 불가능’ 통보를 받았다. 치료약은 손 닿을 수 없는 저 높은 곳에서 목숨을 구걸하게 만들고 통증을 줄일 수 있는 보조공학 기기들은 2천만원, 3천만원을 호가했다. 사회가 성숙하는 속도는 그의 병이 진행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20년간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심신이 지쳐 있었다.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건 운동이 아니라 행운이 아닐지, 고통을 줄이는 건 공동체가 아니라 돈이 아닐지, 통증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울 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그가 다시 혼자 싸우고 있었다.

금호에게도 금호가 필요하네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내가 금호가 아니어서 면목이 없는 기분이었다. 지금 금호의 곁에 스물다섯의 금호가 있다면 그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까짓거, 농성해! 스무살의 금호라면 마이크도 없이 광장에 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것이다. 사람 목숨 갖고 장난쳐? 나는 쫄보라서 소리를 지르진 못하고 조용히 전단지를 돌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나는 어떻게든 그를 지키고 싶고 그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노금호라는 존재는 각자의 어려움을 혼자서 극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고 그것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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