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턴 '내 야구'..연속 타격왕도 해봐야죠

이용익 2021. 12. 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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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한 키움 이정후 인터뷰
타율 1위..세계 첫 '부자 타격왕'
5년 맹활약에 父 이종범도 인정
이제 '타자 이정후'로 홀로서기
올해 80점..부상·올림픽 아쉬워
시즌 끝나고 3주만에 훈련시작
이정후(오른쪽)가 아버지인 이종범 LG 트윈스 2군 감독에게 트로피를 받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시속 140㎞가 넘는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지름 7.3㎝의 작은 야구공을 방망이로 정확히 맞히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어려운 일을 한 시즌 내내 잘한 이에게 주어지는 영예가 바로 '타격왕'이다. 일찌감치 한국프로야구 타격왕이었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들은 어느덧 만 23세의 프로 5년 차 선수가 되어 그 일을 똑같이 해냈다. 올 시즌 123경기에 나서 타율 0.360(464타수 167안타)을 기록하며 아버지 이종범(LG 트윈스 2군 감독)과 함께 세계 야구사 최초의 부자(父子) 타격왕에 오른 이정후(23·키움 히어로즈)의 이야기다.

골든글러브 역시 그의 몫이었다. 지난 10일 이정후는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에서 수상하며 아버지도 못했던 4년 연속 수상을 이뤘다. 시상자도 아버지 이종범. 4년 전 신인왕 트로피부터 지난 2일 은퇴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 그리고 골든글러브까지 아버지에게 직접 받은 이정후는 부자 타격왕을 축하한다는 기자의 말에 "스물한두 살까지는 뭘 해도 아버지랑 같이 했는데 이제 좀 나를 알리고, 내 야구를 할 수 있는 한 해가 된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그의 말대로 아버지는 이정후에게 든든한 버팀목인 동시에 벗어나기 어려운 그늘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이종범이 어린 시절의 이정후에게 차라리 골프나 축구를 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권유했을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올 시즌은 홀로서기 원년인 셈이다. 이정후는 "작년까지는 아버지도 걱정이 응원보다 컸는데 이제야 편하게 응원해주신다"며 "한두 시즌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선수가 될 수도 있기에 프로에서 적어도 5년은 활약해야 제대로 된 평가도 가능하다고 보시더라"고 말했다.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이정후는 "3년 전에도 타격왕 기회가 있었는데 놓쳤다"며 "돌이켜보면 그때 타격왕을 의식한 후로 안 좋은 공에도 손이 나가며 타격 밸런스가 무너졌다"고 털어놨다. 강백호(kt wiz), 전준우(롯데 자이언츠)와 벌인 역대급 타격왕 경쟁에서 과거의 경험이 앞서나간 힘이 됐다는 것이다. 이정후는 "올해도 5경기 18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던 때는 있었지만 예년과 달리 스스로를 믿는 게 가능해졌다"며 "지난 10월 사이클링 히트(한 경기에서 1·2·3루타와 홈런을 치는 것)를 기록한 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속팀이 이겨야 가을야구를 할 수 있던 때라 집중력이 좋아졌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정후가 생각하는 이번 시즌 성적은 80점. 만점은 아니다. 이정후는 "옆구리 부상으로 경기를 다 뛰지 못했고, 도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못 낸 것, 히어로즈로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한 것도 감점 요인"이라고 밝혔다. 그래도 시즌 마지막에 잠시나마 팬들이 들어온 경기장을 즐길 수 있던 것은 기쁜 기억이다. 이정후는 "운동선수로서 좋은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드리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다사다난한 한 해였지만 마지막에 팬들과 짜릿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고, 내년에는 히어로즈라는 이름에 맞게 이 감정을 144경기뿐 아니라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까지 나누고 싶다"고 다짐했다.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한 이정후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아버지 이종범과 `부자 타격왕`에 오른 이정후는 올해 말 시상식에서 가장 바쁜 선수였다. [박형기 기자]
KBO 시상식에서 다음 목표는 홈런왕이라고 농담은 했지만 다음 시즌 목표도 여전히 타격왕이다. 이정후는 "타격왕이야말로 한 시즌을 기복 없이 보냈다는 뜻이고, 그걸 놓치지 않는 선수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이라고 본다"며 "내가 박병호 선배는 아니지 않나. 욕심내서 홈런 몇 개를 늘리려다가는 그만큼 펜스 앞에서 잡히는 아웃도 많아지니 치고 달리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정후는 이제 자유계약선수(FA)나, 일본·미국 등 해외 진출도 슬슬 생각해볼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손을 내저었다. "내 나이에 아직 꿈을 찾고 있는 친구들도 많은데 벌써 구체적인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라고 단언한 이정후는 "일단은 결정할 시간이 됐을 때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시즌이 끝난 지 고작 3주 만에 다시 훈련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보다 앞서는 이정후의 고민은 바로 야구가 팬들의 사랑을 되찾는 일이다.

이정후는 "나도 아직 어린 선수지만 선수, 지도자, KBO 등 모든 구성원이 바뀌어야 팬들도 봐주실 것 같다"며 "현역 선수가 운동을 열심히 집중해서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은퇴한 뒤 지도자나 행정에 가신 선배분들도 잘못된 부분이 있을 때 나서주시고, 시스템을 잘 만들어주시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호부(虎父) 아래 견자(犬子) 없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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