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치료 힘들어요' 문자에 가슴 철렁"..현장 간호팀장의 증언

2021. 12. 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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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치료 최전선'서 뛰는
하미현 하나이비인후과 간호팀장 수기
환자들 건강 관리하는 일보다
마음관리에 더 많은 시간들어
"내가 범죄자예요, 왜 감시하죠"
일부 환자, 전화 걸면 호통도
재택치료 성공 핵심 포인트는
전담 인력 확보인데 쉽지않아

◆ 코로나 대란 ◆

10일 하나이비인후과 재택치료센터에서 하미현 간호팀장이 전화로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하나이비인후과]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면서 병상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지난달 29일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해 재택치료를 기본으로 의료 체계를 전환했다. 서울 강남구 하나이비인후과는 지난달 1일부터 재택치료센터를 열고 코로나19 재택치료 환자들을 관리하고 있다. 재택치료 최일선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하미현 하나이비인후과 재택치료센터 간호팀장의 수기를 게재한다.

'12월 10일 재택치료센터 현황 보고드립니다. 장○○, 이○○ 과장님, 엄○○, 이 ○○ 간호사님 근무

신규 입소 33명,격리 해제 21명, 병원 이송 0명, 누적 입소 520명, 누적 해제 316명, 누적 이송 27명.'

저녁 6시 28분 하나이비인후과 재택치료센터 재택관리팀에 일일 보고를 마쳤다. 재택치료센터 운영이 시작된 것은 벌써 한 달 하고도 열흘째다. 이 센터에는 현재 의사 세 명과 간호사 아홉 명이 재택치료 환자 174명을 돌보고 있다. 11월 1일 강남보건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 18명을 배정받아 9명에게 약을 처방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총 500명이 넘는 환자가 우리 센터에서 치료를 받았다. 환자가 급증하면서 인력을 충원하려는데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 170명이 넘는 환자를 담당하려면 의사 2명, 간호사 4명을 더 뽑아야 한다. 하루 세 번 면접을 볼 때도 있지만 한 달째 '구인 중'이다.

센터 개소를 준비하던 시점의 단상들이 문득 떠올랐다. '환자가 보낸 데이터를 점검하고 전화 몇 통 돌리는 건데 간단하겠네'라는 당초 생각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그 생각에는 중요한 것 하나가 빠져 있었다. 세상을 뒤흔든 전염병에 감염돼 열흘간 일상을 올스톱하고 격리돼 있어야 하는 환자의 심정 말이다. 숙제하듯 체온과 산소 포화도를 입력하고 정한 시각에 전화를 받아 상태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데이터를 입력하려면 앱을 깔아야 하는데 그것조차 버거워하는 분도 많았다. 전화를 걸면 '아프지도 않은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는 반응이 흔했고 받자마자 욕설부터 나오거나 끊어버리는 일도 종종 생겼다. "내가 범죄자입니까. 왜 그렇게 감시해요!"라는 호통을 들으면 헛웃음이 나왔다.

전화를 아예 안 받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증상이 없는 환자라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으니 보건소에 방문 점검을 요청했다. 직원이 달려가 문을 두드리면 대부분 낮잠을 자고 있었거나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설정해놔서 못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응급 상황이 생겨 전화를 받지 못한 거라면 큰일이기 때문에 통화대기 신호음 횟수가 한 번 두 번 세 번 늘어갈 때마다 혹시나 하는 불안이 몰려왔다.

환자 상당수는 건강 체크만으로 통화를 끝내기 어려웠다. '체온이 0.5도 올라갔는데 괜찮은 거냐, 기침이 계속되는데 어떻게 하느냐, 입맛이 떨어진 것도 문제 아니냐…' 등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다. 환자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보다 마음을 관리하는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전담 의사와 간호사들이 환자 100명과 통화한다는 건 100가지 다른 인생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갓 돌이 지난 딸과 엄마가 자택격리에 들어간 사례가 있었다. 엄마는 통화할 때마다 "저 때문에 딸이 아파요"라며 울먹였다. 이때부터는 아이의 체온과 산소 포화도 점검보다 엄마의 마음을 도닥이는 게 우선이 돼 버렸다. "저희 집에도 고만한 꼬마가 있어요. 정말 예쁘겠다. 아기가 곧 열도 내리고 방긋방긋 웃을 거예요. 이건 엄마 잘못이 아니라 코로나19 잘못이에요. 조금만 버티세요." 엄마가 울음을 그치는 게 아이 체온 내리는 것 못지않게 반가웠다. 우리 병원이 도입한 영상통화 시스템은 일부 저항에 부딪혔지만 뜻밖의 성과도 냈다. 환자 상당수는 영상전화를 거부했다. 집에 종일 틀어박혀 있다 보니 차림새도 엉망인데 얼굴을 내보이기는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상통화에 동의한 분들은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말로만 상태를 묻는 것과 얼굴을 보면서 진단하는 것은 다른 얘기였다.

가장 큰 걱정은 가족 간 감염이었다. 가족의 속성상 피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감염된 아기를 돌보는 엄마가 위험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지만 방역은 방역입니다. 가운 입고 마스크와 비닐장갑, 페이스 실드를 착용한 채 아이를 돌보셔야 해요"라고 설명했지만 엄마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방역은 내 아이와 내 남편을 상대로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 몸을 차지하고 있는 바이러스를 상대로 한다는 마음가짐이 절실하다. 다행히 첫 한 달 동안 가족 간 감염은 극소수에 그쳤다.

처음에는 한 달쯤 지나면 센터 운영이 안정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한가한 판단이었다. 확진자는 급증하고 센터 인력의 피로감도 비례해서 누적되고 있다. 간호팀은 지난달 말부터 일일 3교대에서 2교대로 근무가 강화됐다.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센터 운영도 조금씩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재택치료 성공의 핵심 포인트를 고르라면 전담인력 확보라고 믿는다. 규정상 간호사는 재택치료 업무만 전담하도록 돼 있지만 의사는 겸임이 가능하다. 하지만 환자가 50명만 넘어가도 의사가 다른 진료를 보면서 재택치료까지 겸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병원에서 재택치료를 전담한 의사 선생님 3명의 역할은 그래서 빛났다. 코로나19로 인한 상태 변화뿐 아니라 관련 기저질환을 점검하고 격리 때문에 병원에 못 가는 환자들의 각종 질병까지 챙겨 처방했다. 여기에 환자의 심리 상태까지 돌봐야 한다고 보면 전담 의사는 필수다.

교대조를 기다리며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격리기간이 끝나 오전에 마지막 통화를 한 50대 남성분이다. "방금 보건소에서 격리 해제라고 통보 왔어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다른 분들께도 감사하다고 인사 전해주세요."

이렇게 환자 한 분이 일상을 되찾았다. 옷장에 묵혀뒀던 패딩을 입고, 신발 끈 힘주어 매고, 집 문 활짝 열고 열흘 만에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그분은 얼마나 신이 날까. 그 신나는 순간들을 위해 하나이비인후과병원 코로나19 재택치료센터는 오늘도 야간 당직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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