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경찰서 4곳서 개입했지만..'신변보호자 가족 살인' 참극 못 막았다

유선희 기자 2021. 12. 12. 17: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송파 살해사건 현장. 연합뉴스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 A씨의 가족을 살해한 이모씨(26)가 범행 닷새 전 A씨를 감금하고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나흘 동안 전국 경찰서 4곳에서 개입했지만 끝내 참극을 막지는 못했다.

12일 경향신문 취재에 따르면 이씨는 한때 교제하던 A씨와 마주하게 된 지난 5일 충남 천안의 집에 A씨를 감금하고 성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다음날인 6일 A씨를 차에 태우고 본가가 있던 대구로 향했다. A씨는 대구에서 PC 게임 메신저를 통해 친구에게 “감금 당하고 맞았다. 전화기로 연락이 불가능해 메시지를 보낸다”면서 부모님의 연락처를 전달했다. 친구의 연락을 받은 A씨의 아버지는 같은 날 오후 8시40분 해당 사실을 서울 강남경찰서에 알렸다. 경찰은 이씨 주거지의 관할인 충남 천안서북경찰서와의 공조로 신고 접수 20분 뒤인 오후 9시쯤 대구에서 이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현장에 출동한 대구 수성경찰서는 이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지만, 긴급체포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해 귀가조치했다. 경찰은 “피의자가 임의동행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진술이 서로 엇갈린다는 점과 대구에서도 두 사람이 함께 다닌 점 등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당시 조사에서 “A씨와 만나는 사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A씨는 신변보호 조치를 요청했고, 사건이 이첩된 천안서북서에서는 7일 신변보호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A씨는 실거주지를 관할하는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신변보호 대상에게 지급되는 스마트워치를 받았다.

이처럼 전국에 있는 경찰서 4곳이 신변보호 전후 상황에 대처했음에도 신변보호의 직접 대상이 아닌 가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방지하지는 못했다. 스토킹·감금 등의 피해자인 A씨가 보호 대상이 되긴 했지만, 가해자인 이씨의 활동은 ‘통제권’ 바깥에 놓이면서 범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씨는 지난 10일 오후 2시26분쯤 A씨의 주거지인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빌라를 찾았다. 빌라 주민들의 출입을 엿보며 공동출입문 비밀번호를 알아낸 이씨는 A씨의 집 문 앞까지 들이닥쳤고, 당시 집에 있던 A씨의 어머니와 초등학생 동생을 흉기로 찌른 뒤 옆 건물 빈집으로 달아났다. 숨어있던 이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A씨가 신변보호 대상자가 된 지 불과 사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 범행으로 어머니가 숨졌고 동생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씨는 경찰조사에서 “애초 가족이 목적은 아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이씨가 미리 흉기를 소지하고 집을 방문한 것, 건물 진입 당시 공동출입문 비밀번호를 알아낸 점 등을 근거로 계획범죄에 무게를 싣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경찰은 애초 범행대상으로 A씨를 염두에 뒀는지, 경찰에 신고한 가족에 대한 보복인지 등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씨의 휴대전화 포렌식 작업을 통해 A씨에 대한 스토킹이 있었는지도 들여다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날 구속됐다. 서울동부지법은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이씨에 대해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이씨는 이날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직후 법원을 나오면서‘보복살인한 것이 맞느냐’는 등의 취재진 질문에 “죄송합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이별 후 스토킹에 이어 살인까지 이어지는 사건은 최근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대상자나 그 가족이 희생되는 사례가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제주에서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아들 16세 중학생이 살해됐다. 여성의 전 연인이 이별 통보 이후 스토킹을 하다 끝내 살인까지 저지른 사건이었다. 지난 11월17일 서초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한 30대 남성이 여자친구를 흉기로 수차례 찌르고 아파트 19층 높이에서 떨어뜨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송치됐다. 지난달 19일에는 이별을 통보받고 11개월간 여성을 스토킹한 30대 남성이 서울 중구 오피스텔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해당 여성은 신변보호를 받던 중 참변을 당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