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와 함께 돌아온 러시아 괴물

오수현 2021. 12. 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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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거장'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
바흐 '푸가' 등 담은 신보
인간 바흐 집중 조명해
내년 수차례 내한공연 계획
"바흐의 감정 찾아내듯 연주
한국 관객 빨리 만나고 싶어"
다닐 트리포노프는 이번 바흐 음반에서 인간 바흐를 조명하는데 주력했다. [사진 출처 = 트리포노프 홈페이지]
러시아의 젊은 거장 다닐 트리포노프(30)가 1년 만에 새 음반과 함께 돌아왔다. 그런데 그의 손에 들린 음반이 의외다. 러시아 피아니즘의 계승자이자 세계 최고의 비루투오소(기교가 뛰어난 연주자) 피아니스트로 손꼽히는 트리포노프는 그동안 라흐마니노프, 스크리아빈 등 웅장한 스케일의 러시아 음악과 낭만적이면서도 화려한 기교의 쇼팽 작품에 주력해 왔다. 지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도이치그라모폰을 통해 발매한 9장의 음반에는 모두 라흐마니노프와 쇼팽, 리스트의 작품이 수록됐다.

지난달 출시된 트리포노프의 새 음반 타이틀은 '바흐 : 삶의 기술(The Art of Life)'.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그의 아들들이 작곡한 작품들이 2장의 CD에 담겼다. 19세기 후반 낭만주의 시대를 종횡무진하던 그가 돌연 18세기 초 바로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것은 뜻밖이다. 늘상 형형색색 화려하게 차려 입다가 어느날 느닷없이 감색 클래식 수트를 갖춰입고 나타난 느낌이랄까. 지난 10일 트리포노프로부터 서면을 통해 이번 변화에 대한 답을 들었다.

"바흐는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건너 뛸 수 없는 작곡가입니다. 당연히 저 또한 어릴 적부터 바흐와 함께 했죠. 저는 늘 다성음악(여러 개의 각기 다른 선율이 얽히고 설키는 음악)에 매료돼 있었어요. 이번 음반에도 다성음악의 정수가 담긴 바흐의 작품집 '푸가의 기법' 수록곡들을 담았죠. 그리고 제가 낭만주의 음악에만 주력하다가 고전주의 음악을 건너 뛰어 갑자기 바흐로 거슬러 올라간 건 아니에요. 음반 녹음이 없었을 뿐이지 늘 베토벤과 모차르트 등 고전주의 작품들을 정기적으로 연주해왔어요."

바흐의 음악은 푸가에서 진면목을 발휘한다. 하나의 성부가 주제를 제시하면 제2, 제3의 성부가 주제를 모방하며 동시다발적으로 발전해 나간다. 개개의 선율은 독립적이지만 전체적으로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 건물을 설계하듯 구조와 짜임새를 유지하면서도 음악성을 표현해야 하는 고도의 형식이다. 푸가의 대가인 바흐에게서 사랑, 낭만 같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트리포노프는 이번 음반에서 바흐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다.

"연주자들은 바흐의 음악을 학구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흐의 엄격한 푸가 작품에서 조차 다양한 인간적 감정을 발견할 수 있어요. 바흐는 음정과 화성을 통해 감성적 색체를 표현하는데 탁월했어요. 바흐도 삶 가운데 사랑과 이별을 경험했고, 자녀들에겐 헌신적인 아버지였습니다. 바흐의 인간적 면모에 대한 사료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그의 작품에서 인간성을 강탈해선 안됩니다. 그래서 저는 감성적인 측면에서 '푸가의 기법'에 접근했습니다."

이번 음반에는 부인을 향한 바흐의 사랑이 표현된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소곡집' 수록곡과 함께 훗날 탁월한 음악가로 성장한 바흐의 네 아들들의 작품도 실렸다.

"요한 크리스티안과 칼 필립 에마누엘은 활동 당시 아버지 보다 훨씬 유명한 음악가였어요.요한 크리스티안은 당시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던 페달이 달린 피아노를 대중화시켰어요. 현재 우리 모두가 연주하는 그 피아노죠."

트리포노프는 압도적인 파워과 기교, 풍부한 서정성을 앞세워 이미 20대 시절 클래식계를 평정한 슈퍼스타다. 2010년 쇼팽 콩쿠르 3위에 이어 2011년 스무 살 나이에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루빈스타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클래식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손열음과 조성진이 각각 2위와 3위에 올랐다.

"조성진의 연주는 콩쿠르 이후에도 여러차례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8년 산타 체실리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서울에서 연주투어를 할 때였어요.여행이 다시 쉬워지면 조성진을 비롯해 많은 아티스트들을 만나길 바라고 있어요. 내년 시즌 한국에서 여러차례 콘서트도 구상 중입니다. 차이콥스키, 슈만, 모차르트, 라벨, 스크리아빈의 음악을 무대에 올릴 생각이에요. 어서 한국 관객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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