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제재, 피해는 우리가" 美 반도체 업계 '관세철회' 여론 꿈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무역법 301조를 새롭게 발동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중국 반도체 제품에 대한 관세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 내에서 잇따르고 있다. 현행 관세가 중국 정부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바꾸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미국 기업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이달 초 미국 무역대표부에 중국산 반도체와 부품에 대한 무역법 301조 관세를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25%의 관세가 부과되는 이온빔을 활용한 장비, 웨이퍼 프로버(검사장치) 등 품목을 관세 대상에서 제외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SIA는 해당 관세로 중국 토착 기업이 아닌 미국 반도체 기업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중국에서 수입된 대부분의 반도체 칩은 미국 회사가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조립·테스트·패키징 공장에서 가공됐다"면서 "해당 관세는 중국 정부에 실질적 압력을 가하는데 실패했고 오히려 미국의 이익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적었다.
관세 유지가 미국 내 공급망 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정부 목표와도 반대된다는 점도 언급했다. SIA는 "301조는 공급망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관세가 적용되는 반도체의 비용에 25%를 추가하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부족과 수요 증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가격 상승에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문서 제출은 무역대표부가 지난 10월부터 무역법 301조에 따라 관세가 부과되는 중국 수입품 목록에 대한 의견을 제출받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무역법 301조는 교역상대국의 불공정한 무역행위로 미국이 피해를 입으면 보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 전 행정부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고율 관세를 부과한 근거로 쓰였다.
무역대표부가 의견 수렴에 나서면서 업계에서는 무역법 301조가 새로 발동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 대표는 두 달 전 "상황에 달려있다"며 "301조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고 모든 가능한 수단을 살필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SIA 외에도 미국 내에서는 관세를 인하하거나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럿 제시되는 상황이다. 국가대외무역위원회, 정보기술산업협회 등 미국 경제단체들은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뒤로 301조 관세 인하를 지속 요구하고 있다. 이들 주장도 중국 관세 부담이 중국 수출업체보다 미국 업체 및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공급망의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는 인식이 미국 내에서 확산하는 현상이 국내 업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공장을,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D램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피해 사례는 아직까지 발생하지 않았으나 바이든 정부의 중국 견제 불똥이 언제든 우리 기업에 튈 수 있는 구조다.
당장에 무역법 301조로부터도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현행 관세 대상에 메모리반도체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향후에도 그럴 것이란 확신은 하기 어렵다. SIA도 의견서에서 '관세 대상에 올라있지 않지만 제외를 해야할 대상'으로 메모리반도체를 언급했다. 중국으로의 장비 도입 제한으로 사업장의 공정 개선이 지연될 우려도 있다.
반도체 업계 인사는 "국내 기업들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중국에 대한 제재가 오로지 중국에게만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란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면서 "수급이 불안정해지면 결국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강자인 미국 또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라 말했다.
이광만 제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베이징 올림픽과 오미크론 변이 등 영향으로 미국과 중국 간의 셈법이 당분간은 복잡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국내 기업들이 목소리를 내야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쉽지 않겠지만 무엇보다도 기업들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정부 지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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