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상무, 40대 부사장'..MZ세대 "부장님은 부장님일 뿐"
[편집자주] 승진 연한 축소, 절대 평가 강화, 과감한 발탁과 보상...연공서열과 안정성으로 대변되던 제조업, 금융 등 기존 대기업들의 인사와 평가, 보상 관행이 바뀌고 있다. 공정과 수평적 조직 문화를 중시하는 MZ세대에 맞춘 변화지만 빅테크기업, 플랫폼기업, 스타트업 등 젊은 기업들로 빠져나가는 인재들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재계에 불어닥친 인사, 보상 시스템의 변화와 그 의미를 짚어본다.
대기업이 변하고 있다. '때 되면' 승진하던 문화를 벗어나 연공서열 보다 성과와 능력을 중시하는 기조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실시한 임원인사에서 30대 상무 4명과 40대 부사장 10명을 발탁했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 직급·호칭 체계축소 등 한 차례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올해도 이와 유사한 임원인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SKLG·롯데 등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직급을 단순화하고 젊은 경영진을 육성하려는 공통된 행보를 보인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통해 구성원들의 능력과 창의성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시도지만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성공한 플랫폼 기업, 빅테크 기업들로 젊은 인재들이 쏠리는데 따른 반작용이기도 하다. 능력에 따른 과감한 보상으로 젊은 인재들을 지키려는 고육지책의 성격이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주 대상이 되는 사회초년생부터 40대 초반에 이르는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자)들의 반응은 복합적이다.
조직문화가 유연해지면서 기회가 더 많아질 거란 기대도 있지만 연공서열이 중시되는 한국 특유의 사회문화가 쉽게 바뀌기 보다 어정쩡한 형태로 혼란과 비효율이 커질거란 우려도 나온다. 경쟁이 더욱 고도화되면서 상대적으로 고용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란 걱정도 있다.
1987년생으로 삼성 계열사에서 근무하는 A씨는 "여전히 부장님은 부장님일 뿐"이라면서 "직급을 없애고 '○○님'이라고 이름을 부르는 시도도 있었지만, 회사의 바람과 달리 실제 현장에서 직원들이 실천하기는 어려웠다"고 전했다. 1994년생 롯데그룹 재직자 B씨는 "한국 사회 특유의 선·후배 문화가 학교부터 직장까지 이어져 오는데, 후배가 본인보다 일찍 진급하는 데 대해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기업의 변화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선 사회적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에서 근무하는 1988년생 C씨는 "결국 직장생활도 이력을 쌓는 시간"이라면서 "평생 몸담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일찍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게 훗날 다양한 삶의 선택지를 늘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최근의 변화가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란 기대를 나타냈다. 반면 같은 회사에 다니는 1990년생 D씨는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이란 취지와 다르게 평가권자 권한만 강화될 수 있다"면서 "특정 학연·지연 등이 매개가 된 이른바 줄 세우는 문화가 부각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롯데 재직자 1991년생 E씨는 "연공서열이 폐지된 채 개개인 능력만으로 평가한다면 연차가 낮을수록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면서 "독립적으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자리다"고 말했다. SK 근무자 1986년생 F씨는 "임원의 연령이 파격적으로 낮아진다는 게 좋은 현상인지 의문"이라면서 "임원에 오르지 못한 이들이 짐을 싸야 할 시점도 그만큼 앞당겨지는 것"이라 강조했다.
삼성전자 등이 상대평가 대신 절대평가로 돌아서고 있는데 대해서도 평가가 갈린다. 비교 우위에 따른 '줄세우기식' 평가에서 벗어나 임직원 대다수가 상위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긍정론이 있는 반면 '발탁 승진'에 따른 부서장 권한이 커지면서 오히려 평가가 주관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 전반적인 임직원 연봉 상승 수준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냔 걱정도 나온다. 삼성전자 직원 F씨는 "저성과자는 물론 고성과자까지 연봉인상률이 낮아졌다"면서 "전체 임금 인상 규모를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고성과자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돼 전반적으로 인상 수준을 낮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어 "고성과자가 많아질 것이란 가정 하에 내린 조치지만 정말로 그렇게 결과가 나올지는 모를 일"이라 덧붙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2010년을 전후로 일부 그룹에서 연공서열 타파 및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을 시도했지만 몇 년 만에 원점으로 돌아온 전례가 있다"면서 "사회적 인식 변화가 동반돼야 새로운 기업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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