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쏘아올린 기본대출 논란..금융권 "부실위험은 누가 떠안나" 우려

파이낸셜뉴스 2021. 12. 1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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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대출' 청년에게 독일까 약일까

[파이낸셜뉴스]
#1. 사회 초년생 A씨는 생활비가 필요해 대출을 알아봤다. ‘누구나 3분이면’ 은행 어플리케이션으로 대출 한도를 조회할 수 있다는 말에 대학생 때부터 꾸준히 이용해 온 주거래 은행 어플에 접속했다. 대출상품 소개란에는 ‘꼭 맞는 대출을 찾아보세요’라는 안내와 함께 직장인, 개인사업자, 전문직대출 등 열 개가 넘는 상품이 마련돼 있었다. A씨는 ‘직장인’ 신용대출을 조회해봤지만, ‘한도가 조회되지 않는다’며 대출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A씨는 대면 상담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A씨는 ‘재직기간이 짧아 일반신용대출이 어렵다’며 6%대의 높은 금리로 최대 3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는 서민대출만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씬파일러(Thin filer)’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씬파일러는 금융거래 이력이 적어서 금융 활동에 제약을 받는 사람들이다. 씬파일러들은 금융 활동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신용점수가 낮아서 대출과 같은 금융 거래에 제약을 받는다. 현행 신용평가가 금융거래 기록을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특히 대출규제 강화와 금리 인상으로 인해 씬파일러들의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치권이 씬파일러 청년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기본대출’을 대선정책으로 추진하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기본대출은 국민 누구나 최대 1000만원을 연 3% 전후의 저리로 10~20년간 대출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본대출제도가 시행될 경우 씬파일러와 같은 저신용자의 대출 부담이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 있지만, 부채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들어 학자금대출제도가 대학생들에게 당장의 등록금 부담을 줄여줬지만, 대학생들이 매학기 대출을 하면서 이자 부담이 커지고 청년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부터 빚더미에 앉게됐다는 지적과 마찬가지다. 기본대출에 대한 청년들의 의견은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부실위험과 대출금 전용, 재원 마련 등에 대한 부작용으로 인해 금융권에서 반대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미래를 위한 기반” vs "되려 청년 부담"
먼저 기본대출을 찬성하는 청년은 기본대출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구직활동에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데 소득이 없는 청년들이 그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기본대출이 청년들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임용 시험을 준비하는 김씨는 “인터넷 강의(인강) 하나에 몇십만 원씩하는데, 시험에 붙기 위해서는 보통 인강을 열 개 이상씩은 들어야 한다.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시험 준비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며 “낮은 이자율로 대출을 할 수 있으면 지금보다 훨씬 편한 마음으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기본대출을 반대하는 청년의 경우 제도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실제로 대출금이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신용 관리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상태에서 청년들에게 쉽게 큰 돈을 빌려줄 경우 대출금을 충동적으로 써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 강씨는 “대출금을 유흥비로 쓰는 청년들이 있을 수 있다”며 “돈을 너무 쉽게 빌려 주면 나중에 청년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코인이나 주식 투자에 관심이 많은 2030 청년들이 한탕주의로 대출금을 날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부실 위험은 누가 책임지나"
금융권은 기본대출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금융 부실률 증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본대출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실제로 정책이 도입되려면 실무적으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며 “지금도 햇살론과 같은 서민금융대출의 부실률이 높아 공적자금이 많이 투입되는데 기본대출이 시행될 경우 부실금융의 규모가 더 커질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금이 투입될 경우 취지와 달리 국민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와 금융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조성목 서민금융원장은 “복지는 개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지만, 대출을 잘못 이용하면 신용불량자가 되고 향후 금융이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빚 권하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경우 기본대출이 아직 논의 단계에 있는 만큼 구체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 오진송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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