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혁신] 메타버스의 도를 아십니까?

한겨레 2021. 12. 1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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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아십니까?" 꽤 오래전 일이지만 강남역이나 홍대입구를 걸을 때면 느닷없이 나타나 길을 막고 질문을 던지던 사람들이 있었다.

교보문고가 개점한 1980년 이후 처음이라는데, 어찌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도구를 잘 다루는 사람은 그저 좋은 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명인은 도구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적절히 이용해서 본질적 행위에 가까워지는 데 능한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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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뉴노멀-혁신
게티이미지뱅크

김진화 | 연쇄창업가

“도를 아십니까?” 꽤 오래전 일이지만 강남역이나 홍대입구를 걸을 때면 느닷없이 나타나 길을 막고 질문을 던지던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그 질문을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네, 아니요 대신에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또 다른 질문이었다. “과연 도라는 게 있다면, 그걸 안다고 혹은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학창 시절 주워들은 노장사상에 따르면 ‘도’라는 것은 인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어떤 마음 또는 지적 상태에 가까운 무엇 아니던가. 심지어 서양철학에서도 진리 개념을 도달해야 할 결승점이나 정해진 목표지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구성하고 변모하는 상태적 개념으로 본 지 오래 아니던가. 질문을 들으면 대답 대신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하는 성가신 족속임을 이내 알아차렸는지, 인상이 좋다, 운이 좋은데 뭔가에 막혀 있다 등등의 말을 맥락 없이 던지던 그는 생각에 빠진 필자만 남겨두고 떠났다. 

올해 교보문고 단행본 판매 점유율에서 경제·경영 부문이 1위를 기록했다. 교보문고가 개점한 1980년 이후 처음이라는데, 어찌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동학개미, 서학개미 진격에 부동산, 코인 열풍까지, 세상은 이미 ‘대투자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시켜줄 뿐이다. 서점의 서가를 거닐거나, 소셜미디어의 담벼락 사이를 기웃거리다 보면, 여기저기서 가던 길을 멈춰 세우고 묻는다: 인공지능을 아십니까? 모빌리티를 아십니까? 유전자시퀀싱을 아십니까? 블록체인을 아십니까? 엔에프티(NFT)를 아십니까? 메타버스를 아십니까?

유튜브에는 관련 강좌(?)가 산더미를 이룬다. 얼핏 봐도 영상으로 풀어내기는 어려운 내용 같은데도 조회수가 다들 ‘넘사벽’이다. 최신 유행하는 기술 트렌드를 알 수만 있다면 수박 겉핥기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결기가 느껴지는 숫자들이다. 증권가 소식에도 이 같은 기술용어들이 범람한다. 블록체인, 인공지능 수혜주 등은 이미 철 지난 유행가가 되었고, 엔에프티나 메타버스 수혜주쯤은 내걸어야 찔끔이라도 반응하는 모양새다.

요절한 일본의 천재 작가 나카지마 아쓰시는 중국 고사를 소재로 삼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펼쳐 보였는데, 그의 마지막 작품인 <명인전> 역시 장자의 고사를 소재로 한다. 천하제일의 명궁을 꿈꾸던 주인공은, 세세한 기술적 성취에 집착하는 단순한 고수의 단계를 벗어나, 물아일체의 경지를 보여준다. 활 없이 화살을 쏘고, 심지어 활과 화살을 보고 이게 무어냐고 묻는 어떤 경지. “지위는 행하지 않는 것이고, 지언은 말하지 않는 것이고, 지사는 쏘지 않는 것이다.”

도구를 잘 다루는 사람은 그저 좋은 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명인은 도구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적절히 이용해서 본질적 행위에 가까워지는 데 능한 사람일 것이다. 달변가 역시 마찬가지다. 말을 잘한다고 해서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말은 매체일 뿐, 메시지가 잘 전달되고 그에 따라 일이 잘 수행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명인전>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 후 당분간 한단 땅에서는, 화가는 붓을 감추고 악사는 비파의 현을 끊고 장인은 줄과 자를 손에 쥐는 것을 부끄러워하였다고 한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살아낸다는 스트레스는 자꾸만 불안한 눈길로 미래를 응시하게 만든다. 자석에 끌리듯 섹시하게 들리는 신조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다만 한가지만 기억하자. 블록체인이라는 말을 들을 수 없고, 메타버스를 내세우지 않으며, 인공지능이 보이지 않게 될 때쯤 그 미래는 널리 퍼지게 될 것이다. 투자를 해야 한다면, 보이지도 않는 것들을 내세우는 회사가 아니라 멀쩡히 보이는 것조차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데 집중하는 회사와 기술에 미래를 거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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