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의 강화일기] 독일에서 국제미아 될뻔

한겨레 2021. 12. 1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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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의 강화일기]

김금숙 | 그래픽노블 작가

메일이 왔다. 독일 에코캐어(EcoCare)에서 보낸 뉴스레터다. 잊을 만하면 온다. 언제 유럽을 갔던가? 꿈같기만 하다. 고작해야 두 달밖에 안 됐는데 거짓말 보태서 수년 전의 일 같다.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문턱 즈음 벨기에와 프랑스에 다녀왔다. 2주 동안의 전시와 사인회, 작가와의 만남 일정이었다. 유럽 일정을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 탑승 전에 피시아르(PCR) 검사를 낭시 대학병원에서 하였다. 주말이 끼어 만만치 않았다. 음성 확인서를 프랑스어로 받았다. 파리에서 루프트한자 비행기에 오를 때 승무원은 내 서류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 거의 2년 만에 외국에 나가 독자들을 만났다. 즐겁기도 했지만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황에서 꽉 찬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몹시 피로했다. 오랜만에 프랑스어로 대담회와 사인회를 한 것도 한몫했다. 언어는 쓰지 않으면 잊는다. 익숙하지 않은 발음을 내기 위해 혀와 얼굴 근육을 움직이려니 생소했다. 한 문장 말하는 데도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도 몰래 계속 긴장했던 모양이다. 집에 있을 때엔 그렇게 밖에 나가 사람들도 만나고 세상도 보고 싶더니 나가서 돌아다니니 집이 그리웠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내렸다. 오후 6시 조금 지나 비행기를 타야 했다. 네 시간 정도가 남았다. 지갑을 열어보니 40유로가 있었다. 면세점에서 적포도주 한 병과 올리브유를 샀다. 오후 5시40분. 루프트한자 승무원들이 표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피시아르 음성 확인서를 요구했다. 나는 당당히 그것을 꺼내 보였다. 그런데 승무원이 날 보더니 안 된다고 했다. 맑은 하늘에서 번개 맞는 기분이었다. 눈앞이 하얘지고 정신이 아찔했다. 음성 확인서가 영문이어야 한단다. 우겨도 소용이 없고 설명도 애원도 통하지 않았다. 공항 안에서 피시아르 검사를 할 수 있으니 가서 확인서를 영문으로 떼어오란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재검사를 하고 결과 받는 시간까지 비행기가 날 기다려줄 것도 아니고 어쩌란 말이냐?

날은 금세 어두워졌다. 물어물어 피시아르 테스트 하는 곳을 찾았다. 돈 한 푼 없었다. 한국 은행 카드도 전부 집에 두고 왔다. 공항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나? 피시아르 검사는 무슨 돈으로 받나? 독일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난 이렇게 국제 미아 되는가? 식은땀이 나고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공항 내 불빛은 저녁이 되니 더욱 현란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서류 지갑을 뒤졌다. 비자카드가 나왔다. 공항 내에 배치된 현금지급기에 카드를 넣었다. 긴장 탓으로 비밀번호도 생각나지 않았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눌렀다. 틀리면 난 끝이었다. 다행히 맞았다. 200유로를 찾아서 피시아르 검사를 하는 곳으로 달렸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청년이 날 맞이했다. 에코캐어 앱을 깔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당황하는 내게 친절하게 앱을 깔아주며 안내해주었다. 한 시간 이후에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150유로였다. 계산은 비자카드로 하였다.

호텔을 알아봐야 했다. 택시를 타고 시내에 나가서 비어 있는 호텔을 찾아가는 데 드는 경비나 공항 앞에 있는 호텔에 묵는 경비나 비슷할 듯했다. 나는 바로 근처 호텔로 갔다. 다행히 빈방이 있었다. 카드로 계산하려고 했지만 계속 결제 오류가 났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소지한 현금 전액을 냈다. 방에 들어가 짐을 놓고 나오니 음성 확인 결과가 나왔다고 메일이 왔다. 음성 확인서를 찾아 다시 호텔에 들어오니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뜨거운 물에 샤워부터 하고 침대에 누웠다. 온몸이 쑤시듯 아팠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그때 저녁도 굶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200유로짜리 호텔 방에서 자면서 샌드위치 하나 못 먹는 신세라니. 헛웃음이 났다. 내일은 돌아갈 수 있을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짐을 정리해 호텔 프런트에 체크아웃 하러 나갔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뒤에 있던 여성이 말을 걸었다. 그도 나와 같은 경우로 비행기를 타지 못했단다. 그는 아이도 둘이나 있었다. 우리는 서로 용기를 내라 응원해주고 헤어졌다.

입국하며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을 깔았다. 2주 동안 총 세번의 피시아르 검사와 매일 발열체크를 하였다. 그때 독일에서 보낸 밤,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없다면?’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겨울, 다시 코로나 변이가 극성이다. 눈처럼 쌓이는 한숨이 눈처럼 녹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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