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원조로 설립된 KAIST, 50년 만에 뉴욕에 '역진출'
국내 이공계 박사는 1945년 해방 무렵 10명에 불과했고, 1970년대 초만 해도 60여 명 남짓이었다. 과학이란 용어조차 생소하던 1971년, KAIST(한국과학기술원)는 미국의 원조를 받아 설립됐다. 2019년 기준 한국의 총 연구원 수는 53만명을 넘어섰고, KAIST에서만 졸업생 7만명이 쏟아졌다. 지난 반세기 이공계 인재 사관학교였던 KAIST가 이제 글로벌 개척에 나선다. 무대는 과학 최강국의 중심, '뉴욕'이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현지에서 배희남 미국 글로벌 리더십 파운데이션(GLF) 회장과 '뉴욕 캠퍼스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배 회장은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가 부동산 사업에서 수완을 발휘한 자산가로, KAIST 뉴욕 캠퍼스 설립을 위한 부지 약 1만평(3만3057㎡)과 건물 매입을 약속했다.
국내 대학이 미국에 교육·연구 협력 수준을 넘어, 미국 제도에 맞춰 캠퍼스를 설립하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KAIST는 2~3년 내 토지·건물 매입을 완료하고, 미국 내 교육기관 허가 등을 거쳐 캠퍼스 문을 열 계획이다. 다만 실제 캠퍼스 개소 시점은 향후 절차에 따라 다소 유동적이다.
KAIST는 국내 학생을 해외로 보내 견문을 넓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미국 현지 학생도 뽑아 글로벌 교류가 가능한 캠퍼스로 만들 예정이다. 또 뉴욕을 KAIST 교수·학생의 국제협력 교두로보 만들고, 글로벌 시각을 지닌 KAIST 출신 창업가들이 나스닥에 상장하는 '창업 전초기지'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뉴욕의 강점인 금융·문화·예술 분야에 AI(인공지능)·ICT(정보통신기술) 등 과학기술을 접목할 계획이다.
배 회장은 곧바로 투자를 결정했다. 한 달의 장고 끝에 약 1만평 규모 부지와 건물 매입까지 약속했다. 아직 매입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인 뉴욕의 부동산 가격을 고려하면 투자금액은 수백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배 회장은 "세계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며 "실력있는 인재들이 한국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세계 속에서 경쟁하고 세계를 이끄는 리더로 거듭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총장님이 비슷한 뜻을 얘기하시면서 투자를 약속하게 됐다"고 했다.
이번 뉴욕 진출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KAIST 역사에도 중요한 방점이 될 전망이다. 반세기 전 미국 국제개발처(USAID)로부터 600만달러 지원을 받아 설립된 KAIST는 성장을 거듭해 세계 상위권 대학으로 도약했다. 올해 QS 세계대학 랭킹 공학·기술 분야에선 16위를 기록했다. 뉴욕 내 최상위권 대학으로 꼽히는 코넬대(36위), 컬럼비아대(47위), 뉴욕대(94위)보다도 높은 순위다.
이 총장은 "KAIST의 뉴욕 캠퍼스는 단순히 캠퍼스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국내와 해외의 동시 교육 시스템으로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에서 성적에만 몰두하지 않는, 주어진 환경과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글로벌 인재를 키울 것"이라면서 "뉴욕캠퍼스는 KAIST가 미국 실리콘밸리 등 글로벌에 캠퍼스를 만들어나가는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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