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의 시선] '치타' 배달이 없을 때도 치킨은 언제나 옳았다

이선영 MBC 아나운서 2021. 12. 1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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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이선영 MBC 아나운서]

치킨값 2만 원 시대라더니 정말이다. 지난 주말 시켜 먹은 1만8000원짜리 치킨에 배달료가 3000원 붙어 2만1000원이 나왔다. 치킨값 1만8000원에서 가맹비를 제하고 쿠팡이츠나 배민 같은 플랫폼 수수료로 치킨값의 10%를 빼고, 소비자와 점주가 배달비를 반반 부담하는 배달료까지 빼버리면 대략 5200원이 남는다. 인건비며 매장 임대료, 부가세 같은 부대비용을 고려한다면 치킨 한 마리에 3000원도 남지 않는다.

게다가 거리 할증, 날씨 할증, 시간대 할증. 이런저런 이유로 배달비가 오르기 일쑤인데, 이러면 소비자와 점주가 배달비를 나눠 부담하는 구조에서 점주는 정말 남는 게 없다. 따끈하고 맛있는 치킨을 이렇게 빨리 받아 볼 수 있으니 응당 지불해야 하는 서비스 요금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렇게 비싼 배달비로도 라이더들이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며칠 전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따르면, 배민은 3000원, 쿠팡이츠는 2500원으로 최소 배달료를 묶어놓고 초마다 배달료를 바꾼다. 기사 배정은 AI가 한다. 그는 “강남구만해도 1234로 쪼개져 동네마다 배달료가 다르다”고 했고, “강남구1에서 6000원을 보고 출근했다가, 플랫폼 알고리즘이 배달료 2500원인 강남구2로 보내면 할 수 없다”고 했다. 만일 배달료가 높은 강남구1에 라이더가 많은 상황이라면, 갑자기 배달료가 낮아지기도 한단다. 이런 변동성 때문에 라이더들은 수입을 운에 맡겨야 한다.

요샛말로 더 '소름'인 건, 이렇게 오른 배달료로 아무도 이득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배민과 쿠팡이츠는 배달료로만 연간 1000억 이상을 지출하며 적자 경영 중이다. 이 두 공룡 플랫폼이 시장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펼친 쩐의 전쟁 속에서 모두가 출혈하고 있는데, 소비자와 점주는 말할 것도 없고 배민과 쿠팡이츠처럼 높은 요율의 배달료를 지급하기 힘든 동네 배달대행 업체도 속속 문을 닫고 있다. 살아남는 자가 아무도 없는, 그야말로 '치킨게임'이다.

라이더 확보를 위한 두 플랫폼의 출혈 경쟁에 제동이 필요하다. 신사업 축에 속하는 배달 서비스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 아니냐는 비판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오히려 모든 마케팅 역량이 '배달 속도'에만 집중되어 있는 지금의 경영 행태가 기이하다. 더 중요한 지점은 배달 서비스 특성이 변화했다는 거다. 배민 한 곳에서만 지난해 연간 배달 건수가 6억8300만 건을 기록했다. 그러니 배달앱을 중심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지는 세어보지 않아도 알만하다. 배달 서비스는 이제 기꺼이 돈을 더 내고자 하는 일부 사람들을 겨냥한 특화 서비스가 아니라 서민들의 보편적 서비스다. 이를테면 택시요금처럼 요율 변동성을 줄이고, 급격한 요금 인상을 제약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라이더 업계에서는 이미 대안을 제시했다. '안전 배달료'다. 배달 플랫폼, 배달 대행업체와 라이더 등 유관자들이 모여 배달료 심의 위원회를 설치해 적정 배달료를 정하자는 아이디어다. 이렇게 하면 플랫폼 기업들의 과도한 경쟁을 방지해 점주와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고율의 배달료를 좇다 생명을 위협받는 라이더의 안전도 보장할 수 있다. 지난 8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대표 발의하며 힘을 실어줬다.

남은 건 배달 서비스를 소비하는 우리들의 지지다. 아무리 현실을 냉철히 반영한 대안도 소비자의 합의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더군다나 거대한 기업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면 더 그렇다. 새로 음식을 해서 배달까지 오는데 20분 밖에 걸리지 않는 '치타' 서비스에 익숙해졌지만, 집에서 차려 먹는 밥도 그보다 더 들 때가 많다.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치타'같은 배달이 없을 때도 치킨은 언제나 옳았다. 지금보다 조금 덜 빨라도 괜찮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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