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데이트 폭력'이 사랑싸움이라고요?

정혜민 기자 2021. 12. 12.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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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1일 아침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

빈소에서 만난 A씨의 친척은 기자에게 "이 사건은 명백히 '스토킹 살인'이지 '데이트 폭력'이 아니다"라며 이 사건을 데이트 폭력 범죄로 명명하는 언론의 관행을 지적했다.

이재명 대선후보가 자신의 조카 김모씨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데이트 폭력 중범죄"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피해자 유족 B씨는 "데이트 폭력이 아니라 계획 살인"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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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피의자 김병찬이 29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2021.11.29/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왜 기사에서는 '데이트 폭력'이라고 하나요?"

11월21일 아침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 전 남자친구의 스토킹 끝에 무참히 살해당한 30대 여성 A씨의 발인이 있었다. 빈소는 울음바다였다. A씨의 가족과 친구들은 갑작스런 죽음에 황망해했다.

빈소에서 만난 A씨의 친척은 기자에게 "이 사건은 명백히 '스토킹 살인'이지 '데이트 폭력'이 아니다"라며 이 사건을 데이트 폭력 범죄로 명명하는 언론의 관행을 지적했다.

그는 "A는 데이트하다가 죽은 것도 아니고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다"며 "데이트 폭력이라는 말은 유족을 두 번 상처 주는 말"이라고 했다.

A씨는 최소 5개월 동안 스토킹을 당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를 11월19일 살해한 김병찬(35)에게는 특정범죄가중법상 보복살인·보복협박, 스토킹처벌법 위반, 상해, 주거침입, 특수협박, 협박, 특수감금 등 총 8개 혐의가 적용됐다.

A씨는 경찰에 김씨를 6번가량 신고했다. 주변에 김씨의 스토킹으로 인한 불안감을 호소했다고 한다. A씨는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고 있었고 범행 당시 경찰 스마트워치로 신고했으나 결국 살해당했다.

최근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가 부쩍 눈에 띈다. 누가 정해주기라도 한 것처럼 가해자-피해자가 부부일 때는 '가정 폭력', 연인(혹은 헤어진 연인)일 때는 데이트 폭력이라고 명명하는 식이다.

언론뿐만 아니라 수사기관, 심지어는 여성단체도 흔하게 '데이트 폭력' 용어를 쓴다. 과거 범죄로 인식하지 못했던 '연인 간 폭력'을 공권력이 개입해 수사하고 처벌해야 하는 '범죄'로 인식하게 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역할을 한 용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이 단어의 수명이 다한 듯하다. 피해자들은 데이트 폭력이라는 용어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며 일부 전문가도 데이트 폭력이 부적절한 용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재명 대선후보가 자신의 조카 김모씨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데이트 폭력 중범죄"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피해자 유족 B씨는 "데이트 폭력이 아니라 계획 살인"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씨는 2006년 이별을 통보한 전 여자친구 C씨 집에 찾아가 C씨와 그의 어머니를 흉기로 수십차례 찔러 살해했다. C씨의 아버지인 B씨는 이를 피하다 5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B씨는 이 후보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 후보가) '데이트폭력' 운운하면서 자신과 유족의 인권을 유린했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미숙한 표현으로 상처받으신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는 "데이트 폭력이라는 용어는 '사랑싸움'으로 보이게 한다"면서 "데이트는 평등하게 사랑하는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데이트 폭력' 용어를 쓰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힘이 동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주로 '파트너 폭력'(Intimate partner violence)이라는 용어를 쓴다. 간혹 '데이트 학대'(Dating abuse)라는 단어도 쓰인다. 둘 다 우리나라에서는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로 번역된다.

이 교수는 "UN에서 쓰는 것처럼 데이트 폭력이 아닌 '파트너 폭력' 용어를 사용하는 게 옳다"면서 "혼인신고를 했든, 하지 않았든, 나누지 말고 모두 파트너 폭력 범주 안에 포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언경 뭉클 미디어인권연구소장은 "최소한 살인에 이르렀을 때는 교제 살인이나 살인으로 명명해야 한다"면서 "스토킹의 경우 연인이 아님에도 (가해자가) 연인 관계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데이트 폭력이라고 부르면 사랑싸움으로 보이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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