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보컬'의 따뜻한 속삭임 "노래가 말해요, 지금 사랑하세요"

한겨레 2021. 12. 1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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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충걸의 인터+뷰][한겨레S] 이충걸의 인터+뷰
가수 소향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소향은 생각보다 체구가 작았다. 무대에서 키가 아주 커 뵈는 배우가 실제로 단구(短軀)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놀람이랄까. 물론 소향이 아틀라스같이 큰 덩치일 리는 없었다.

“다들 작다고 해요. 워낙 스케일이 있는 곡을 하다 보니 저를 아주 큰 사람으로 생각하시더라고요. 옷 스타일도 생각해서 노래할 때 되게 높은 힐을 신어요. 불안하지 않아요. 버릇이 돼서. 또 카메라는 더 확대돼 보이잖아요.”

뒤로 동여맨 포니테일 머리에 ‘엔와이’(N.Y.) 철자가 적힌 모자를 눌러쓴 채 소향이 명랑하게 말했다. 직진성의 목소리가 궁륭 같은 호텔 로비에 울렸다. 그리고 검지와 중지, 손가락 두개에 칠해진 청자색 매니큐어의 위트.

“무대만 보신 분들은 제가 낯 엄청 가리고, 되게 무서울 거라고 생각해요. 무대가 카리스마 있으니까 예민한 디바의 모습일 것 같은데, 전혀 안 그렇거든요. 저는 되게 쾌활하고 수다쟁이고, 낯도 별로 안 가려요. 약간 옆집 아줌마 같은….”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시시엠 가수에서 ‘나가수2’ 등 통해 최고 가창력 지닌 대중가수로

자기만의 이야기로 마음 흔드는 가수

모자챙 아래 메이크업하지 않은 눈이 고민 없이 깔깔거렸다. 소향은 어쩌면 동네 편의점에서 마주치는 낙천적인 재수생 같았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소향의 보컬을 이야기했다. 발성과 공명, 호흡과 색채, 볼륨 컨트롤과 보컬 민첩성. 심지어 입 모양과 표정, 느닷없이 풍부해진 청자(聽者)의 경험까지. 극동의 변방에서 뼈가 자란 가수가 머라이어 케리,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옹 같은 불세출 보컬리스트들과 비견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머라이어 케리가 ‘이모션’ 뮤직비디오에서 초고음 부분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르는 걸 보고 되게 충격받았어요. 고음도 진성과 두성 저 너머의 가성이 레인지마다 다르잖아요. 저 사람은 뭐지? 특히 ‘버터플라이’에서 생각지 못한 애드리브와 여러 가지 발성을 섞는 스킬에 감탄하면서 엄청 연구를 많이 했어요.”

탁월한 가수의 노래는 두 가지로 나뉜다. 감탄과 감동. 기술적으로 훌륭하다면 감탄을, 더 파고들어가 환부를 어루만진다면 감동을 줄 것이다. 지금, 일부 이름난 보컬 코치며 트레이너들은 소향이 그래미상 수준보다 높은 경지인데다 노래 해석의 관점을 바꾸었다면서 감격해한다. 동물원이나 놀이공원에 가도 저렇게 황홀할까, 싶은 얼굴로. 때로는 거의 서정적으로 함몰된 듯 보인다. 가사를 모를 때조차 그의 감정을 공유하며 눈물 흘리는 걸 보면.

“누구나 인생에 굴곡이 있어요. 저도 폐렴 걸리고 힘든 과정을 겪다 보니 내 안에 쌓인 고민들이 묵은 와인이 흘러나오듯 터져나오는 것 같아요. <복면가왕> 때 피디님이, 리허설까지만 해도 그냥 노래 잘한다, 그 정도였는데 본공연 딱 들어가니까, 뭔가 다른 사람이 부르는 거 같았대요. 나는 그냥, 그냥 불렀을 뿐인데 뭔가 다른 힘이 있는 게 아닌가….”

소슬한 종교적 무드는 소향의 피부와 같다. 쭉 뻗는 벨팅과, 믹스 보이스 위에 물결치는 그루브와, 초월적 음역으로 기름 붓는 순간, 모든 노래가 가스펠을 듣는 것처럼 거룩해지니까.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예전에는 더 높은 음을 내거나 비브라토를 구사하면 잘한다고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옥타브의 경계조차 없어진데다 모두 독학한 듯 인후를 떤다.

“제가 <보이스킹> 심사를 하면서 느낀 건, 노래 잘하는 사람이 진짜 많구나. 근데 자신만의 이야기로 마음을 흔드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고요. 피치 틀리고 박자 어긋나는데 노래를 잘한다고 느끼진 않잖아요. 기술적으로 완벽한 상태에서 조금 흔들려도 자기의 이야기를 잘 전달해주는 것이 진짜 가수라는 생각을 요즘 해요.”

목소리를 찾는 탐험은 20년도 훨씬 전에 시작되었다. 소향은 마이클 잭슨의 보컬 트레이너였던 세스 릭스에게 레슨도 받았고, 그의 소개로 다른 보컬 스타일리스트의 교습을 받던 중 ‘보이즈 투 멘’의 전 프로듀서와도 만났다.

“어느 날, 저보다 먼저 레슨 타임 가졌던 분이 한국인 3세 여자분이었어요. 그런데 주섬주섬 옷을 챙겨서 가시려다가 계속 제 노래를 듣는 거예요. 엘에이(LA) 갈 때마다 찾아오시더니 디즈니랜드도 같이 놀러 가재요. 알고 보니 그 여자분의 여동생 남편이 보이즈 투 멘의 프로듀서인데, 저를 일부러 거기 끼운 거예요. 돌아가는 길에 봉고차에서 저한테 노래를 시켰는데 그 프로듀서분이 나랑 데모 작업 해보자, 그래서 그 집에서 일주일을 먹고 자고 하면서 녹음을 했어요. 그런데 되게 신기했어요. 내 목소리 아닌 것 같았어요. 그분이 내가 몰랐던 능력을 끌어낸 거예요.”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6만여개 ‘유 레이즈 미 업’ 버전 중 최고” 미국서 잇단 러브 콜

최고의 실력 뒤에 따라온 ‘무대 운’

다른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본다는 것에는 직선적이고 독단적인 측면이 있다. 때로 어떤 전지적인 면이 불안을 주기도 한다. 다들 자기 삶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으니까. 그러나 소향의 보컬 능력은 너무나 여러번, 너무나 여러 방식으로 입증되었다. 특히 2012년, 한국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애국가를, 2014년, 미국프로농구(NBA) 리그에서 미국 국가를 다이너마이트 공장이 폭발하듯 무자비한 초고음으로 발사해 관중의 멱살을 틀어쥔 일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2016년, 텍사스 레인저스 구장에서 동시에 부른 애국가와 미국 국가는 무반주인 채로 경기장 자체를 불로 그을려버렸지. 자꾸 소향의 보컬 원리는 그가 꿈꿀 수 있는 것 이상이라는 생각만 든다.

“그때가 <사운드 오브 뮤직> 뮤지컬이 끝난 뒤였어요. 마지막 공연 때 배우, 스태프들 모아놓고 미니 콘서트를 해줬어요. 인터미션(중간 휴식 시간) 때, 내가 전에 애국가도 불렀으니까 미국 가서 미국 국가 부르는 게 소원이야 그랬는데, 엔비에이 측에서 연락한 거예요. 다들 너무 신기해했어요. 저는 그게 엔비에이라는 것만 알지 무슨 선수가 있는지 몰랐어요. 미국 국기가 있고, 대나무 같은 사람들이 서 있는데, 진짜 얼떨떨했어요. 노래가 끝나고 들어가는데 엘에이 클리퍼스의 크리스 폴이라는 선수가 와서 최고의 국가였다고 칭찬해줬죠.”

<나는 가수다2> 출연 전까지 소향은 대중적 전파력이 취약한 시시엠(CCM·기독교 대중음악) 가수의 세월을 보냈다. 하이 시(C)로 치솟는 샌디 패티의 ‘어폰 디스 록’을 리메이크하며 존재감이 우뚝하긴 했지만.

“<나가수2> 나가기 전까진 가요를 불러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감성이 안 느껴진다, 소리만 지르냐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 당황했어요.”

그러나 소향은 카누의 노가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듯 새 장르의 과녁을 겨누었다.

“<나가수2>는, 가요 입문의 시간이었어요. 그 전에는 피치·박자 정확하고 고음에서 딱 때려주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여기는 소리를 죽여서 내고, 저기서는 흑인적인 발성을 내다가 어떨 때는 고음을 확 찔렀어요. 근데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 같은 경우는 소리를 70퍼센트만 냈어요. 소리를 컨트롤하고 그 안에서 다시 컨트롤하면서.”

소향은 악기를 나열한 다음 블루스면 블루스에 맞는 악기를 꺼내 쓰듯 노래의 콘셉트 따라 목소리 소스를 꺼냈다. <불후의 명곡> ‘마이클 볼튼’ 편에서 부른 ‘린 온 미’는 음악을 최대치로 사용하는 가수에겐 노래 하나가 일생의 축적이라는 걸 알게 해주었다. 모두를 소향 음악의 체류자로 만들면서.

“‘린 온 미’는 한 소절 한 소절을 띄어서, 여기서 이렇게, 이 파트는 올리거나 내리고, 애드리브도 반복되지 않게, 코러스 메이킹도 하며 완벽하게 ‘와꾸’를 짠 다음 외워서 한 거예요. 마이클 볼턴 앞이니까 떨렸죠. 떨리니까 수백번 연습을 했어요.”

음악도 수학처럼 소리를 나누고 더하고 곱하는 것. 우리는 사이렌의 노래를 듣지 않기 위해 몸을 묶고, 귀를 봉하는 율리시스가 아니었다.

“무대는 행운이 있어야 돼요. 스위치가 꺼지고 켜지는 건 종이 한장 차이예요. 저, 공연 날 역류성 식도염이 와서 목소리가 안 나온 적도 있었어요. 누구는 공연 도중에 그런 일이 온다고도 해요. 진짜 복불복이에요. 폐렴이 3, 4년 동안 여덟번 반복될 때는 공포가 극에 달했죠. 그 두려움은 나 자신에 관한 게 아니었어요. 사람들의 평판, 쟤 이제 끝났네, 하는 두려움. 내가 가수가 된 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가 아닌데, 나중에는 되게 창피하더라고요.”

어떤 소프라노는 알토 범위의 낮은 음에서 조금 불안정해 보인다. 그러나 소향의 ‘미스티’(Misty)에 퍼지는 사운드에 집중하면 그 저음이 얼마나 견고하고 자욱한지 알아챌 수밖에 없다.

“<비긴 어게인> 할 땐 소리를 30퍼센트밖에 못 냈어요. 사람들은 기술적으로 화려한 걸 좋아할 것 같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 정도밖에 못 했는데 더 큰 위로를 얻는 거예요.”

가수 소향(왼쪽)이 2018년 평창겨울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소프라노 조수미와 대회 주제곡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사람 노래를 내 이야기로 만드는 힘

사람들은 각각 특정한 노래 목록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노래의 초점은 듣는 사람을 향할 것이다.

“3년 전인가, 노래할지 말지, 도망치듯 뉴욕으로 여행 갔어요. 필라델피아에서 공사장을 지나가는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말이 펼침막이 걸려 있는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두려움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그 순간 노래를 안 하겠다는 이유가 두려워서라는 걸 알았어요. 그냥 돌아가서 제일 처음 들어오는 스케줄을 하자, 그게 <복면가왕>이었어요.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요?”

한편, 소향에게는 매우 이색적인 분화구 지점이 있다. 소위 히트곡이 없는데도 보컬리스트로서의 가치가 폭등한다는.

“히트를 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강박을 주진 않아요. 다른 노래를 통해 그 이야기를 내 이야기로 만드는 것도 저의 강점이라고 생각하니까. 저도 나름대로 곡도 쓰고 계속 앨범을 내지만,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 거죠.”

그러나 달래기 힘든 야망에 허둥대지 않는다고 해도 음악에는 무엇인가 추가되어 있다.

“솔직히 얘기하면 저, 잘한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쉽게 받지 못하는 재능을 받았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이클 볼턴 노래 할 때 내가 왜 열심히 했는데요? 마이클 볼턴을 통해서 미국 시장에 갈 줄 알았거든요.”

소향은 작은 물고기처럼 깔깔댔다. 이런 솔직함은 개구지다 못해 차라리 무정하게 느껴졌다.

“<불후의 명곡> 하면서 생각지 못했던 스킬들이 나오니까 이거는 세계 누구도 할 수 없어, 나는 견줄 만한 실력이야, 여기 있기 아까워, 레이싱카처럼 폭주했어요. 깨닫지 못한 욕망이 숨어 있는데 사람들한테 희망을 주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인 척하고 싶었던 거예요.”

사실 소향에겐 저명한 기획사며 프로듀서들의 러브 콜이 잇달았다. 그래미상 16개의 데이비드 포스터는 밴쿠버 콘서트에 소향을 초청했고, 불발되자 도쿄 ‘블루 노트’(재즈 공연장)에서 브라이언 맥나이트와의 공연에 재차 초대해 같이 무대에 섰다. ‘유 레이즈 미 업’의 원곡자 조시 그로번은 전세계 16만5천개 버전 중 소향이 가장 좋다면서 노래 세 곡을 선사했다. 1년 전, 소향은 소니뮤직 같은 대형 음반사의 제안도 고사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또 누가 있을까!

“미국 진출을 하려면 거기랑 계약해야 해서, 깊이 생각했어요. 제 막내시누이 진주가 미국 록 밴드 ‘디엔시이’(DNCE) 기타리스트인데, 10년간 옆에서 보니까 너무 바쁘고, 너무 힘들고, 내가 추구하는 것과 너무 달랐어요. 내가 욕망에 집착하는 것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면 거절을 못 했을 거예요.”

어리사 프랭클린의 전기 영화 <리스펙트>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어리사가 상종가를 칠 때 프로듀서가 말한다. “너, 이 제안 받아들여서 전세계 다니면 일년 안에 엄청난 돈을 벌 거야.” 소향은 독립 레이블로 남길 원하는 걸까?

“그런 회사를 통해서 뭔가를 하면 기적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이 조그마한 인천 땅에 이러고 있다가 뭔가 빵 터지면 그거야말로 기적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전에는 마음속에 버네사 아모로시와 모니카 나랑호, 두 몬스터 보컬리스트가 있었다. 그 자리에 소향이라는 더 센 몬스터가 나타났다. 그러나 강철로 만든 가수라도 언젠가는 고음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럼 그때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

“제가 <나빌레라>라는 드라마 오에스티(OST)를 불렀어요. 제 노래가 나오기 직전 엔딩 장면에 최백호 선생님의 ‘바다 끝’이 나오는 거예요. 그냥 무방비 상태로 눈물이 났어요. 진짜 세 시간을 울었어요. 그분은 누구 눈치도 안 보고 긴 세월을 지나 이렇게 고백해, 라고 덤덤히 노래하는데 일흔이 됐을 때 내가 전달할 수 있는 음악은 뭘까? 전에는 ‘나 소향이야’ 하고 보여주지 못할 바엔 은퇴하는 게 낫겠다 그랬는데, 여든이 되어 고음을 못 내더라도, 기술적인 완벽함으론 보여줄 수 없는 울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아무리 노래를 해도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노래가 침을 발라 봉투에 붙였던 우표처럼 자기로부터 떨어져나간다면? 침묵이 다시 고였다. 시간의 올을 풀어 보푸라기로 만드는 침묵이.

“그냥… 괜찮을 것 같아요. 처음 노래할 땐 그냥 좋아서 했거든요. 저는, 아무도 듣지 않아도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아무것도 넣지 않은 풋풋한 마음에 익을 대로 익은 내 목소리를 집어넣는다면, 처음의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제 노래서 힘 얻었다는 팬들에게 감사, ‘사랑하자’ 메시지 전하고파”

영혼 움직이는 강력한 언어, 음악

그 눈 주위에 떠다니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불렀던 노래가, 폐로 흐르는 메시지가 그 자신의 말처럼 느껴졌다. 그 감정이 넘쳐나 이 편까지 요구하는 어떤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이제 가장 행복을 느끼는 상태에 대해 물었다. 데이비드 보위는 독서라고 말했지.

“전 글 쓰는 거요. 커피 한잔 들고 커피숍에 앉아서 쓰는 게 저는 너무 재밌어요.”

대답이 새끼 노루처럼 깡충거렸다. 그는 성서의 서사를 판타지로 비튼 <아낙사이온>과, 자기 방법으로 펼친 <크리스털 캐슬>을 썼다. 만화가가 되리라던 어렸을 때 꿈은 판타지 소설을 영화화하고 싶은 깜찍한 야망으로 돌진하는 중이었다.

“전세계에서 편지를 보내주시는데, 암 투병 속에서 죽고 싶었는데 제 노래를 듣고 살 희망을 가졌다는 걸 보면서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아요. 음악은 영혼을 움직이는 강력한 언어예요. 말로 나오는 언어랑은 너무 다르죠. 저의 목적은 노래라는 도구를 통해 ‘이제는 좀 사랑하세요’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거예요.”

노래의 환영은 노래가 삶 가까이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12월 밤, 어리사 프랭클린의 ‘오 홀리 나이트’를 들었다. 마법 같은 순간의 영적 포만감이랄까, 어리사가 ‘폴 온 유어 니즈’라는 부분에서 세 가지 다른 옥타브로 ‘폴’(Fall)을 부를 때 소향 생각이 났다. 목소리를 통제한다는 것, 음표를 존중한다는 것, 빈틈없는 질감으로 고음을 밀어붙인다는 것. 무엇인가 우리 상상과 심장을 사로잡을 때 문득 바이럴하고 싶을 것이다. 그 순간은 소향을 지탱하는 언어를 퍼뜨리고 싶었다. 인간의 특권은 사랑하는 거라던.

녹취 조아라

작가. 전 <지큐 코리아> 편집장.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 인터뷰집 <해를 등지고 놀다>와 18년 동안 써온 ‘에디터스 레터’를 모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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