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뚫은 득음, 이탈리아 뚫은 판소리 한류..명창 김정민, 피렌체 공연 성황

강석봉 기자 2021. 12. 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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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흥보가' 피렌체 공연후, 10분간 기립박수
|객석 350석 중 75%가 현지인
|"K팝, K드라마의 뿌리, 전통음악이었다" 극찬


“제비 몰러 나간다, 제비 후리러 나간다.”

‘흥보가’에서 놀보가 제비 잡으러 나가는 장면이다. ‘벼락부자’된 흥보에게 시샘을 느낀 놀보가, 자기도 제비 다리를 고쳐 대박 한번 나겠다며 굳이 그물을 들쳐메고 이 산 저 들을 헤매었겠다.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길…김정민이 간다

국가무형문화제 제5호 판소리 ‘흥보가’의 이수자인 명창 김정민이 해외 투어를 계획 했을 때, 사람들은 과욕이라 했다. 2년 전 성공적으로 이탈리아 밀라노 공연을 마쳤지만, 애써 ‘찻잔 속 태풍’이라 여기는 분위기였다.

이 뿐이 아니다. 이달 7~14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피렌체·베네치아 등 3개 도시 투어 공연을 벌인다 했을 때, 무리라 했다. 완창이란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명창 김정민 역시 강행군이란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런 그가 7일 로마와 10일 피렌체 공연을 마치고 14일 베네치아 공연 만을 남겨두고 있다. 일주일새 3번의 완창을 하는 셈이다. 명창 김정민은 지난 2013년부터 지금까지 판소리 ‘흥보가’와 ‘적벽가’ 완창 무대를 16차례 이어왔다. 이번 주 공연을 마치면 총 19회의 판소리 완창 공연을 마무리하는 셈이다. 이렇게 홀로 완창 판소리를 꽉꽉 채운 것은 판소리계에서도 최초이지 아닐까싶다.

■누구도 한 적이 없는 일……김정민이 한다

명창 김정민의 판소리 완창 ‘흥보가’는 창본집 기준 65쪽, 글자 수로는 3만2764자에 이른다. 인터미션을 빼고 순수한 공연 시간은 2시간30분이다. 1초에 3.6개의 분절음을 계속 해서 쏟아내야 한다. 이를 프롬프터 없이 달달 외워 고수(최광수)의 북장단에 맞춰 노래하고 춤을 춘다.

판소리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거침없이 풀어내야 한다. 진양조로 관객을 어르고 중머리로 감정을 돋우게 한 후 자진모리로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들면서 휘모리로 하이라이트를 찍는다. 명창 김정민의 판소리는 곧곧하게 서서 부르지 않는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객석을 어르는 아니리(사설)와 무대를 맹폭하는 발림(춤사위)은 판소리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진심은 통화는 법이다. 10일 피렌체 ‘테아트로 오데온’ 극장에서 이어진 판소리 ‘흥보가’의 현지 투어 두번째 공연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 이날 350여 객석 중 75%가 현지 관객이었다.

■누구도 받은 적 없는 평…김정민이 받다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후 십여분 간 기립박수를 이어갔고, 사진 촬영 요청도 쇄도 했다. 공연 전 축사를 했던 한국대사관의 피렌체 명예 영사인 리카르도 젤리 씨는 “판소리 공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며 “다시 한번 피렌체를 찾아달라”고 말했다. 태극기협회의 장은영 부회장은 “판소리가 이렇게 재미있는 공연이었냐”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공연장 대표인 글로리아 제르마니 씨는 “한국 문화는 K-팝이나 한국 영화만 알고 있었는데, 그 속에 이렇게 깊이 있는 전통 문화가 뒷받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번 공연을 통해 알게 됐다”고 전했다. 공연 당일 비를 뚫고 차로 1시간 30분 거리의 리보르노(Livorno)에서 온 마리아 씨는 “오는 길이 힘들었지만 한국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 도움을 준 이탈리아 한인 미술인협회 조경희 협회장(아르코이 대표)은 “이렇게 귀한 명창을 피렌체에 모시고 직접 공연을 보게 된 것에 가슴 벅차오른다”는 말을 남겼다.

■누구도 이루지 못한 꿈…김정민이 꾼다

앞서 밝혔듯, 공연 당일 비가 와 공연자는 물론 관객들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명창 김정민은 시차 적응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국악에 입문한 지 올해로 42년이 된 그의 내공은 현실적 어려움은 넘어야 할 것이라 여겼다. 판소리가 이탈리아에 쩌렁쩌렁 울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내공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 명창 김정민의 음역폭은 107㏈에 이른다. 대개 폭포 득공을 얘기할 때, 그 폭포의 경우 82㏈이고 나이아가라 폭포가 90㏈ 정도 된다. 공사장 불도저 엔진 소리가 이 정도다. 이는 300명이 한꺼번에 소리친 함성과도 같다. 그의 득음이 소음을 뚫어낸 것이고, K-판소리가 우려를 넘어선 것이다. 게다가 영화 ‘휘모리’로 대종상 여우신인상을 탄 그의 연기력이 무대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한편 김정민 명창은 지난 10월 미국 뉴저지 버겐카운티 주관 ‘코리안 한복의날’ 행사를 위해 물심양면 서포트한 공으로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봉사상 금상을 수상했다. 또 미국 뉴저지주 로레타 웨인버그 상원의원, 고든 M 존슨 하원의원으로 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현지 공연은 철저한 방역 수칙에 따라 진행됐다. 최근 오미크론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더 엄격해진 방역으로 공연장이나 극장 등의 공간에 입장하기 위해서 모든 입장 관객들과 스태프·공연자는 ‘슈퍼 그린패스’(백신접종증명)의 지참은 물론이고, 추가로 공연 전 48시간 이내의 항원검사(PCR) 결과도 지참해야 공연에 참여 할 수 있었다. 마스크 착용도 필수였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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