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영화일까?

현화영 2021. 12. 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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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론적인 질문을 던져볼까 한다. 최근 들어 자주 던지게 되는 질문인데, 얼마 남지 않은 2021년도 마무리할 겸 잠시 생각해보고 싶다. 새삼 영화의 역사도 기억하면서. 

과연 영화는 무엇일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영화일까? 

영원불변의 유일한 답은 없으니, 지금 여기서 우린 무엇을 영화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도의 질문이라 하겠다. 

무엇인가를 정의할 때에는 나름의 기준을 적용하여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무엇이다.’ 식으로 정리하게 된다. 물론 그 기준은 늘 바뀌어왔고, 그에 따라 정의나 의미도 변화되어왔다. 또한, 기준도 늘 여럿이어서, 여러 정의나 의미가 공존해왔다. 다만 시기에 따라 대세 정의가 있긴 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정의하는 기준과 그에 따른 정의는 바뀌어왔다. 특히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변화를 맞았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 영화 탄생 시기에 영화는 카메라와 필름, 영사기를 활용해 동영상을 제작, 상영하는 기술 및 그 결과물을 의미했다. 덕분에 세계적으로 영화의 명칭이 움직임을 의미하는 무비, 시네마, 키노, 모션 픽처, 활동사진 등이 됐다. 중국의 전영(전기로 만들어진 그림자)과 우리나라와 일본의 영화(비추어진 그림)는 상영과정을 짐작하게 하는 명칭이다. 

그 시기 영화는 막 발명된 영화용 카메라와 필름, 영사기를 활용한 움직이는 영상이라는 기준을 충족하면 됐다. 1분 이내로 짧았고, 딱히 스토리도 없었고, 카메라 움직이나 편집도 없었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신기한, 생전 처음 보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러다 10여 년이 흐르면 흑백 무성 장편극영화가 대세가 된다. 또 시간이 흐르면 흑백 유성 장편극영화가 대세가 되고, 컬러 유성 장편극영화가 대세가 된다. 과거의 1분 미만 원 테이크 짜리 영상은 완성된 영화보다는 미완의 부분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21세기를 넘어서면 제작 과정에서 필름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사실 영화의 경우,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만 영화’라는 식의 범위 규정이 강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장편극영화 이외에 단편영화, 다큐멘터리영화, 실험영화 등 다양한 형태의 영화가 공존해왔다. 다만 대세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꽤 오랫동안 영화를 정의하는 기준으로 적용되던 ‘영화관 개봉’이라는 기준이 최근 들어 급속하게 힘을 잃고 있다. 1950년대 이후 TV, VCR, 인터넷 등의 등장으로 영화 보기 방법이 다양해지는 와중에도 영화관의 역할을 늘 유지됐었다. 개봉된 영화를 TV나 VCR, 인터넷에서 ‘다시 보기’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물론 TV로만 방영되거나 비디오로만 출시, 인터넷으로만 유포되는 영화도 있었지만, 단막극이나 비디오물, 인터넷 영상 등으로 명명하는 ‘유사’ 영화의 느낌이 강했다. 뭔가 구분 지어야 할 것 같은 그런 콘텐츠였다.  

 
불과 몇 년 전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감독 봉준호, 2017)를 국내에서는 영화관에서도 개봉하려고 하자, 국내 멀티플렉스 영화관 3사가 개봉을 거부했다. 넷플릭스 등의 OTT 플랫폼이 자체 제작 영화를 영화관 개봉 후 다시 보기 서비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플랫폼을 통해 온라인 개봉을 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OTT가 영역 침범을 시도한 것으로 본 것이다. 유명 해외 영화제와 관련해서는 출품 자격에 영화관 개봉을 넣느냐 마느냐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영화관을 폐쇄하진 않았지만, 영화 관객이 급감했다. 덕분에 영화관 개봉이 첫 단계, 시작이라는 인식이 급격하게 바뀔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됐다. 

극장 개봉을 미루다가 OTT 공개를 선택했던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 2020), ‘승리호’(감독 조성희, 2021), ‘서복’(감독 이용주, 2021)도 있었다. OTT와 영화관 상영을 동시에 하거나, OTT 상영 후 영화관 상영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영화관 개봉이나 상영 역시 여러 상영 방식 중 하나 정도로 인식되어 가는 중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영화관에서 개봉되지 않은 영화들에 대해서도 TV용 영화나 인터넷용 영화, OTT용 영화라는 식으로 구분 짓는 것에 대한 필요성도 덜 느끼게 된 것 같고.

더 나아가 영화와 드라마의 구분도 흐려지고 있다. 구독 중인 OTT 플랫폼에서 개별 결재 단계 없이 동일한 방식으로 서비스하다 보니, 감상을 위해 선택 가능한 다양한 콘텐츠 중 하나로 인식되기 쉽다. 게다가 영화감독이 드라마도 연출하고 있으니, 이미 제작 인력 간의 영역 이동도 시작됐다.

올 한 해 영화관이나 OTT 관련 생각을 많이 했다. 몇 차례 글로 쓴 적도 있는데, 그동안 느슨하게라도 경계선을 긋고, 구분 짓던 것들이 점차 뒤섞이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영화’의 범위가 더더욱 넓어지고 있음도 느낀다. 역사의 산증인인 셈이니, 열심히 지켜보며 생각해 볼까 한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 외부 필진의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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