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에 구멍 뚫린 '3%룰'..이마저 없애자는 전경련

한겨레 2021. 12. 1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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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수헌의 투자 '톡'][한겨레S] 김수헌의 투자 '톡' / 새 연재
전경련의 모범회사법안과 3%룰
현행법은 남양유업처럼 직계가족 중심의 비상식적인 이사회를 운영하는 대기업을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사진은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 ‘불가리스 과장 홍보’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습. 공동취재사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최근 ‘모범회사법’을 내놓았다. 상법 내 회사편을 따로 떼내 만든 법안이다. 가만 보니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이른바 ‘3%룰’ 폐지다. 자산 2조원 이상 회사는 이사회 내에 감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감사위원은 이사(사내이사, 사외이사, 기타비상무이사)여야 한다. 자산 1000억원 이상 회사는 상근감사를 두는데, 대신 감사위원회를 설치해도 된다. 우리나라 상법은 주주총회에서 감사 또는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3%까지만 인정한다. 이를 통상 3%룰이라 부른다.

현행 ‘3%룰’ 곳곳이 허점투성인데
사조·남양 등 빈틈 파고들어 악용

“3%룰 탓 경영권 위협” 주장 지나쳐

전경련이 3%룰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두가지다. 기업의 자유로운 지배구조 구성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 그리고 해외 투기세력들이 경영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대주주 입장을 대변하는 전경련으로서는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본다. 하지만 일반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3%룰이 과연 지배구조와 경영권을 위협할 정도로 ‘위력’을 발휘해왔는지는 의문이다.

과거 증권거래법에 3%룰을 도입 시행한 이래 20여년이 흘렀다. 이를 고려하면 우리나라 기업 상당수는 지금 원하는 대로 지배구조를 만들지 못했어야 한다. 또한 적대적 인수합병(M&A) 공격에 시달리고 있거나, 어쩌면 몇십개 기업은 벌써 경영권이 넘어갔어야 한다.

3%룰 때문에 원하는 지배구조를 갖추지 못하여 고심 중이라거나, 적대적 인수합병을 당했다는 사례를 들어보지는 못했다.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갑질 사건 이후 여러가지 사건사고에 휘말렸다. 오랫동안 실적과 주가는 하락을 거듭했다. 지난 4월에는 주력 유제품 ‘불가리스’의 코로나 예방효과를 주장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가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홍원식 회장 일가는 회사를 살리겠다며 사모펀드운용사 한앤컴퍼니와 경영권 지분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이게 5월 말 일이다. 오너 리스크 탈피와 기업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로 회사 주가는 치솟았다. 홍 회장은 그러나 경영권 이양을 위한 임시주총을 ‘노쇼’로 회피했다. 한앤컴퍼니 쪽이 매각 선행조건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등 갈등을 빚었다. 9월 초 급기야 계약해제를 선언한 뒤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당시 이 회사 이사회를 들여다봤더니 아흔살이 넘은 지모씨가 30여년 동안 이사회 멤버(비상임이사)로 활동 중이었다. 오랫동안 이사회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지씨는 홍 회장의 어머니다. 이 회사 사내이사 4명 가운데 3명이 사주 직계가족이며, 사외이사는 2명에 불과했다. 홍 회장은 경영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급여로 연 십수억원을 받아갔다. 줄곧 사회적 비판을 받으면서도 남양유업이 이런 비상식적인 이사회를 유지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사주 입장에서는 ‘너무나 자유로운 지배구조 구성’이 가능했다.

최근 자본시장에서 논란을 일으킨 기업을 또 하나 꼽자면, 사조산업을 거론할 수 있겠다. 사조그룹 주진우 회장은 개정상법에서 처음 도입한 ‘감사위원 분리선임’ 제도를 최근 완전히 무력화했다.

지난 8월 이 회사는 임시주총을 앞두고 있었다. 일반주주들은 대주주가 경영 전횡을 저질러왔다고 주장하며 감사위원 선임 표대결을 별렀다. 상법상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는 최소 3명 이상의 이사로 구성해야 한다. 이 가운데 과반은 사외이사여야 한다. 감사위원회는 재무제표 등 회계 관련 자료와 외부감사인의 감사 결과를 검토하고,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실태 등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감사위원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아주 중요하다.

과거 상법에 따르면 이사는 주총에서 일괄선임한다. 이사 후보들에 대해 주주들은 찬반투표를 먼저 한다. 이 단계에서는 3%룰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등 지분 대량 보유자들도 지분만큼 의결권 행사가 가능했다. 이렇게 선임된 이사들 가운데 감사위원이 될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찬반투표를 한다. 이때는 3%룰이 적용된다. 예컨대 대주주 ㄱ이 40%, 특수관계인 ㄴ이 10%, 특수관계인 ㄷ이 5%라면 각각 3%까지만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다. 일괄선출 방식으로 하면 어차피 대주주 쪽이 내세우는 인물들이 이사로 선임된다.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감사위원이 된다.

분리선출제도는 감사위원 중 1명은 다른 이사들과 분리하여 선임하자는 것이다. ‘감사위원이 될 이사’ 후보를 정하고, 이 사람에 대한 찬반표결 때 처음부터 3%룰을 적용한다. 이사 선임과 감사위원 선임을 한번에 처리하는 셈이다. 대주주 쪽은 ㄹ씨, 일반주주 쪽은 ㅁ씨를 감사위원 후보로 내세우고 표대결을 한다고 해보자. 분리선출 때 대주주 쪽의 행사 가능 지분은 총 9%(3%+3%+3%)다. 일반주주(총 44%로 가정)들이 모두 일치된 의견으로 투표한다면 주총에서 일반주주 유효지분율은 83%(44%/53%)가 된다(대주주 쪽은 17%). ㅁ씨가 감사위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전경련은 ‘아예 폐지하자’ 법안 제시
내년 정치권 지형 변화 영향 받을 듯

끝모를 꼼수 경영 ‘쪼개기 지분대여’

임시주총을 한달여 앞둔 8월10일,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은 사조산업 지분이 감소했다는 내용의 공시를 한다. 주총이 눈앞인데 외려 지분을 줄였을 리가 있을까 싶어 공시를 세밀하게 살펴봤다. 지인 2명에게 각각 3%씩 지분을 대여하는 바람에 14.2%에서 8.2%로 감소했다는 내용이다.

주식대차거래를 하면 대여받은 사람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주 회장은 3%룰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쪼개기 지분대여라는 꼼수를 동원하여 의결권 행사 가능 지분을 6% 늘렸다. 사조산업 지분을 보유한 일부 계열사도 다른 계열사와 지분을 사고팔았다. 대주주 쪽 유효지분을 단기에 급증시키기 위한 조처였다.

주총 결과는 일반주주들의 패배. 일반주주 입장을 대변하는 단 1명의 감사위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작전에 개정상법의 분리선출제도는 이렇게 무너졌다. 감사위원을 모두 분리선출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분리선출 이사는 이사회 내에 단 1명이다. 이사회가 다수결로 운영되는 한, 한국앤컴퍼니처럼 일반주주가 밀었던 감사위원이 이사회에 입성하여도 대주주를 견제·감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감사위원이 없었던 자산 2조원 이상 기업 또는 감사위원회 자율설치 기업들은 내년이나 내후년 주총에서 감사위원을 분리선출 해야 한다. 사조산업 때문에 허점이 드러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에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까? 내년 정치권의 지형 변화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fnt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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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경제전문 미디어 ‘글로벌모니터’ 대표.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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