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혜교의 삶과 사랑은 계속된다('지헤중')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1. 12. 1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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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헤중'의 익숙한 상황, 다른 선택에 담긴 의미

[엔터미디어=정덕현] "영원한 건 없다. 잡을 수 있는 것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늘을 지금을 살고 사랑하는 것 뿐." SBS 금토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9회는 하영은(송혜교)의 이런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 내레이션은 미래도 과거도 아닌 현재를 살고 사랑하라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윤재국(장기용)의 어머니 민여사(차화연)를 만나러 가는 하영은의 마음이 그것이다. 민여사는 하영은이 10년 전 잠깐 만났다 헤어졌던 윤재국의 배다른 형 윤수완(신동욱)의 친모다. 하영은을 만나러 빗길에 차를 몰고 나간 윤수완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것이 하영은의 잘못은 아니지만 민여사는 그렇다고 아들의 죽음을 지워버리고 하영은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의 시간은 윤수완이 사망한 10년 전에 멈춰져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속 남자 친구의 어머니를 찾아 인사를 하는 여자 주인공의 광경처럼 보이지만, 그 익숙한 상황 속 인물들의 모습들은 사뭇 다르다. "감히 니까짓 게"하며 물을 뿌리는 어머니도 없고, 반대하는 어머니 앞에서 눈물 따위 흘리며 물러나는 여자 주인공은 더더욱 없다. 그들은 사뭇 차분하다. 민여사는 재국에게 어떤 마음이냐 묻고, 하영은은 '사랑'이라 말한다. 수완이와 재국은 피는 달라도 형제라고 재차 강조하자 하영은은 그것으로 마음이 변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자 민여사는 화를 내기는커녕 자신을 "설득해 달라"고 하영은에게 요구한다. 전형적 멜로드라마 속 익숙한 상황이지만 과거와는 다른 전개다.

하지만 민여사가 단념한 건 아니다. 그는 하영은을 집으로 초대해 그 마음이 어느 정도인가를 시험한다. 일부러 윤수완의 방문을 열어두고 하영은이 마주하게 한 것. "자식은 지우거나 치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나는 10년 전 그 때랑 똑같아요. 재국이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재국이 옆에는 항상 수완이가 있을 거고 수완이 아는 사람들과 흔적들이 계속 따라다니겠죠. 하영은씨가 재국이랑 가겠다는 건 그 모든 걸 견디는 거예요. 아무렇지 않게 뻔뻔하게. 그럴 수 있겠어요?"

말로는 미래도 과거도 아닌 현재를 살고 사랑하겠다 다짐했지만, 눈앞에 직접 마주한 과거의 잔상들과 그로 인해 펼쳐질 미래에 대한 이야기 앞에 하영은은 흔들린다. 하지만 이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또 다른 선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머니의 허락을 애초부터 바라거나 하려 했던 건 아니라며 자신은 자신의 길을 갈 것이라고 윤재국은 말한다. 보통의 통속적 멜로가 그 허락에 목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나는 넷이 같이 살 순 없어요. 자식 하나 가슴에 묻고 그 자식을 나한테서 뺏어간 여자가 내 남은 자식이랑 웃는 거 에미가 돼서 그냥 봐지지가 않아요. 그런데도 가겠다면 가야지 어쩌겠어요. 하지만 난 없을 거예요." 민여사가 하영은에게 던지는 이 비수 같은 말들은 충분히 이해되는 면이 있다. 엄마 입장에서 어찌 먼저 간 자식을 쉽게 지워낼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도 민여사의 반응은 여타의 멜로와는 사뭇 다르다. 윤재국을 만나겠다는 하영은을 무조건 막겠다고 하지 않고 대신 자신이 떠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강력한 반대 앞에서 하영은이 윤재국에게 보이는 반응 또한 다르다. 그는 10년 전 윤수완을 만났던 그 두 달 간이 후회된다며 더 절절해진 자신의 마음을 윤재국에게 고백한다. "처음으로 그 모든 시간을 후회할 만큼 당신을 사랑해. 그래서 너무 미안해." 하영은은 결국 현재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현재로 인해 누군가는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아픔을 계속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영은이 현재의 삶과 사랑을 선택한다는 건 과거와는 달라진 우리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다름을 주장할 필요는 없다. 다르다는 건 당연한 것이다.' 올리비에 루스탱의 명언으로 시작하는 9회는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익숙한 멜로드라마 속 상황 속에서도 달라진 현재의 이야기들을 하영은과 윤재국이 보여주는 일련의 다른 선택으로 보여줬고, 또한 시대가 변하면 체형도 바뀌지만 여전히 과거의 치수에만 머물러 있어 이와 싸워 바꿔나가려는 패션업계의 이야기로도 풀어냈다.

생각해보면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그간 멜로드라마들이 그려온 익숙한 상황들을 가져와 전혀 다른 선택들을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들을 담았다. 재벌가 딸이지만 친구인 황치숙(최희서) 같은 인물이 윤재국에 반하게 되는 익숙한 상황을 가져오지만 그렇다고 사랑에 집착해 친구와 갈등을 일으키기보다는 먼저 친구인 하영은을 지지해주는 모습이 그렇고, 석도훈(김주헌)이 황치숙과 일종의 계약연애를 하고 그래서 그것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 약속하지만 황치숙의 아버지 황대표(주진모) 앞에서 거짓말을 못하고 선선히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나 거기에 오히려 황대표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장면도 그렇다.

우리네 삶이 무에 그리 다를 것인가. 세상이 바뀌었어도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일들이란 대개 비슷할 게다. 성장하고 사랑하고 때론 헤어지고 그러다 다시 사랑하고... 하지만 같아보여도 거기에는 '다름'이 존재한다. 사람들마다 다르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생각과 가치관도 달라지며 그래서 선택도 달라진다. 누구나 결국은 '헤어지는 중'인 삶을 살게 마련이고, 그래서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은 늘 우리 앞에 나타난다. 여기에 대해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삶과 사랑은 계속된다고.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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